춤추는 대학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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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인력수급 상황을 감안해서 89학년 8천5백 명, 90학년 1천3백 명을 늘려 현재보다 9천8백 명이 많은 19만6천4백 명 선으로 확정짓고 90학년 이후엔 대입정원을 동결한다』는 것이 작년도 아닌 금년 8월, 불과 3개월 전에 문교부가「교육개혁안 강·단기 추진계획」으로 거창하게 발표한 내용이다.
아무리 조령모개라 해도 이럴 수는 없다. 어제 발표된 문교부 계획에 따르면 90년에 제천·논산 등지에 7개 대학을 신설하고 순차적으로 이 계획을 실시해서 93년까지 22개 대학이 문을 열게되었다는 것이다. 석 달 전 20만 명 미만 선으로 대입정원을 동결하겠다는 장·단기 추진계획에서 무려 22개 대학을 3년 동안에 신설하겠다는 표변.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여기에 더 가관인 것은 이 사상 유례없는 대학증설인가의 이유가 지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 때 지역주민을 향한 선거공약 사항이라는 점이다.
입시과열이라는 사회적 열병 속에서 성적위주의 비정상적 교육을 받아야하는 교육풍토 위에서 그나마 교육정책을 퍼나가기도 어려운 판에 선거공약 때문에 교육정책을 교란시킨다면 우리의 교육은 정말 사공 없는 배가 될 수밖에 없다.
86년 초에 발표된 교육부문 6차5개년 계획안의 대학정책 내용도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인 향상에 주력하고 있고 사학의 만성적 재정난을 어떤 방식으로 보전하느냐에 모여 있었다. 기존의 대학마저 실험용시설의 미비와 교수대 학생비율이 35.4명이라는 선진국의 고등학교수준, 1%미만의 형편없는 재단보조비율 때문에 학내의 분규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 어떤 명분으로 22개 대학의 신설을 인가해줄 수 있겠는가.
수년에 걸쳐 인력수급에 맞춰 전문가들이 수집한 대학 진학률은 88년 26.9%, 89년 26.6%, 90년 26.4%, 91년 25.3%로 낮아지게끔 계획되었다. 물론 고졸자 75%가 대학엘 가겠다는 엄청난 응시과열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대입 과열현상과 인력수급 계획이라는 두 분명한 현실을 감안할 때 20만 명 정원에 응시자 50만 명 선은 그나마 지켜져야 할 적정 선이다. 영국·프랑스·서독 등의 대학진학률이 20%선인데 비하면 그래도 5∼6%가 높다.
이러한 현실적 적정 선을 하루아침에 무시한 채 선거공약 이라는 정치바람에 밀려 90년에 7개 대학 3천명의 정원이 늘고 91년 22개 대학으로 늘어나면 줄잡아 1만5천명의 정원이 늘어야 한다.
기존대학이 1명의 정원도 늘리지 않았을 때 그런 수치가 나온다.
대학의 지방분산은 물론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력수급원칙에 따른 정원동결과 수도권 대학의 양적 팽창방지가 그것이다. 이러한 전제가 계산된 지방대학 신설이라면 그나마 납득할 일이다.
나라 안팎이 뒤숭숭할수록 교육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원대한 목표아래 세워진 교육정책이 정치의 입김으로 하루아침에 바뀐다면 더 더구나 부당한 일이다. 22개 대학 신설안건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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