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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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불면증 환자의 성격상 특징은 급하고-참을성이 없다는 점이다. 누웠다하면 곧바로 잠이 들어야 한다. 잠시를 누워 기다리지 못한다. 잠이 안온다고 투덜거린다.
그래서 불면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이란게 어디 그런가. 누운 후 얼마간 뜸을 들여야 온다. 이 시간을 못 참는다. 그만 마음이 급해져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속이 답답하다. 밖에 나가 찬바람을 쐬기도 하고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마신다.
보통사람도 자리에 누워 잠이 오기까지 평균15분 정도는 걸린다. 불면증 환자의 입면시간도 여기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게 학자들의 보고다. 그런데도 왜 불면증이라고 생각하나. 환자도 이 15분을 마치 몇 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아주 긴 시간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잠을 기다린다. 1초, 1초를 의식하고 계산한다. 맥박 하나, 숨소리 한번까지 신경을 쓴다. 그럴수록 초조해진다. 계속 몸을 뒤척인다. 잠시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지 못한다. 벌써 몇 시간이 경과된 것 같다. 이런 긴장상태에선 잠이 들었다가도 금방 깬다. 깜박깜박이다 빨리 자야할텐데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이러고 누워있으니 어떻게 잠이 오나. 이런 사람의 처방은 딱 한가지-졸릴 때 잠자리에 가라는 것이다. 졸리지도 않은데 누워 잠을 기다리니까 문제다.
할 일을 하다가 졸린다싶거든 자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일정한 시간에 갈 수가 없게된다. 따라서 우선 정해진 시간에 자야한다는 강박증부터 버려야한다. 불면증일수록 이 강박증에 매달리는 경향이 높다.
큰 변화가 없는 한 자기가 자는 시간은 대체로 일정하다. 또 그렇게 하는게 몸에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사람의 하루생활이 기계처럼 일정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먼 곳에 있는 벗을 맞아 한잔 할 수도 있고 동료 흉사에 밤을 새울 수도 있다. 그게 사는 맛이다. 몸 컨디션인들 매일이 한결같을 순 없다. 몸살이라도 날 지경이면 잠이 더 필요하다. 등산·낚시 등 활동량이 많은 날은 그만큼 잠을 더 자야한다. 종일 빈둥거리며 뒹군 휴일은 좀 늦게 자도 아무 탈 없다.
정해진 시간에 자는 것은 좋다. 하지만 거기에 매달리면 불면증이 된다.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누워 기다린다는 것은 불면증을 스스로 부르고 있는 짓이다.
졸릴 때 잔다는 원칙을 세워라. 그때까지는 밀린 일을 하겠다는 부칙을 세워라. 그리고 일을 해라. 물론 과격한 신체적 자극은 금물이다. 잘 시간이 가까울 때의 지나친 흥분은 잠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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