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한 표정…두 차례 말문 끊겨|전두환 전 대통령 연희동 떠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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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 」을 끝으로 은둔생활로 들어갔다.
10·26 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합동수사본부장으로 국민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전씨가 이제 완전히 역사의 망각 속으로 「퇴장」하고 만 것이다.
대통령직을 물러 난지 꼭 9개월만에 5공의 온갖 영욕과 함께 무대의 뒤 안으로 사라지는 그가 연희동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시각들은 착잡했다.
『저는 지금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로 시작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과 성명은 25분간에 걸쳐 시종 무겁고 침통한 어조로 계속.
전 전 대통령은 떨림 없이 또박또박 사과문을 읽어내려 갔지만 대통령 시절의 위엄이 넘치던 음성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힘이 없고 처연한 목소리였으며 특히 『국민 여러분이 주는 벌이라면 어떤 것이든 달게 받겠고 가라는 곳이라면 조국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어디든 떠나겠다』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선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침울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당초 몇 가지의 질문에 답하겠다는 일문일답도 계획했었으나 감정을 이기지 못한 듯 『국민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는 마지막 구절을 마치자마자 질문할 틈을 주지 않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9개월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온 전 전 대통령은 이마의 주름살이 더욱 깊이 팼고 하관도 상당히 여위는 등 매우 초췌한 표정이어서 그 동안 국민들의 지탄여론에 고민하고 번뇌했음을 반영.
한때 위엄이 돌던 눈매도 초점을 잃은 듯 했으며 두 어깨도 많이 처져 있어 『9개월 사이 많이 늙었다』는 소리도 건네졌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사과문 발표 도중 『바로 밑 동생이 어린 제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떤 단죄라도 달게 받겠으며 국민 여러분의 심판을 기다리겠다』는 등 두 대목에서 끝내 목이 메고 울먹여 잠시 말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는 재산부분설명 대목에서 잠시 왼손을 들어 손짓을 했을 뿐 시종 두 손을 탁자 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사과 문안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낭독.
연설이 끝난 뒤 전씨는 내실로 들어가 넥타이 정장차림을 간편한 재킷차림으로 갈아입고 돌층계를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안현태 전 경호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내려왔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 이순자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대문 앞에는 인근에 살던 주민 10 여명만이 지켜봤으며 뒤늦게 찾아온 윤길중 민정당대표 부인 등 2∼3명이 대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나오는 이씨의 손목을 잡고 함께 흐느꼈다.
전씨 부부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완전 검은색 유리를 끼워 안을 볼 수 없게 한 승용차에 올라 골목을 빠져나갔다.
전씨의 사과문은 22 일 낮 연희동 에서 전씨의 불참 속에 작가 이병주씨와 전씨 측근들이 모여 최종 독회를 하고 문안을 대충 확정.
전씨는 독회 후 마련된 최종문안을 보고 받고 별다른 의견표시 없이 수용했다고 측근들이 부언.
5공 관계 소설집필의 자료수집을 위해 전씨의 대통령 퇴임 이후 전씨를 수 차례 만난 인연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소설가 이씨는 사과문안이 너무 사과일색이어서 올림픽 얘기 등 으 균형을 맞추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
사과문 초안은 21일 밤 청와대에 보내졌는데 마지막까지 재산부분이 문제돼 22일 밤까지 최종 손질.
당초 연희동 측은 정치자금의 잔 여분은 없다고 했으나 청와대측이 국가원로자문회의의장으로 쓰려고 남겨둔 돈이 있지 않느냐고 몰아쳐 결국 1백39억 원이 명기되게 됐다는 얘기.
재산처분에 관해 「정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처분해주기 바란다」로 낙착된 이유는 「헌납」 등의 용어를 쓰면 부정축재의 인상을 남길 우려가 있고 「국고귀속」을 사용하면 앞으로의 정치적 처리에 제약을 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측근들은 설명.
전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 후로는 『우선 시국이 안정되어야 한다』 내가 감옥살이를 하든 법정에서든 정국과 사회만 안정된다면 등의 말을 하는 등 평정을 되찾았다는 것.
한 측근은 『한때 두 분은 친·인척 구속에 자극 받아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으나 이젠 모든 것을 다 훌훌 털어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그야말로 마음을 비운 무아의 상태』라며 『이순자 여사도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오히려 전 전 대통령보다 한발 앞설 정도로 초연한 심정을 보이고 있다』고 전언.
전 전 대통령내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막내아들(고2)의 심리적 충격과 거처 등의 문제였는데 아들이 이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아 측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는 얘기.
막내아들의 거처는 21일 밤까지도 결정하지 못했으나 반포 외할아버지 댁(이규동씨)이나 방배동 매형(윤상현씨) 집중에서 맡게될 것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출 연희동」의 전야인 22일 밤 연희동은 비서 진·경호원들의 최종 짐 꾸리기 작업등으로 부산했으나 내방객은 예상보다 적어 9∼10 대 정도의 승용차만 눈에 띄었다.
확인되지 않고 있는 임시거처로 이삿짐을 옮기는 작업은 21일부터 시작돼 이날 하루종일 계속됐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는 썰렁한 날씨여서 더욱 우울한 분위기. 특히 밤늦게 이일대가 약 40분 정도 정전이 돼 암흑에 휩싸였는데 언론사 등에는 『전씨가 미리 떠나기 때문 아니냐』는 주민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으나 한전 측은 『단순한 정전사고』라고 해명.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표가 있자 청와대측이 주문한 내용이 거의 다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대책수립에 골몰.
한 소식통은 『오늘로서 전 전 대통령은 5공 비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이제 모든 책임과 해결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떠넘겨졌다』며 다소 비참한 각오로 앞일을 걱정.
이 소식통은 『이제 노 대통령은 5공 비리를 누구에게 미룰 수 없으며 야당이나 재야로부터 어떤 도전이 있더라도 앞장서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전 전 대통령이 그만큼 털고 일어났으면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자제는 다 보인 것 아니냐』고 반문.
소식통은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전씨의 은둔처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전씨 부부가 단촐히 떠나더라도 신변안전을 위한 병력은 상시 배치해야 하므로 소재지를 감추기는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집무실에서 홍성철 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함께 전 전 대통령의 TV발표를 지켜보았으며 발표가 끝나자 곧 김영식 문교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등 정상집무. <문창극·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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