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수사 이제부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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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 전 대통령의 형 전기환·전우환 구속에 이어 처남 이창석씨도 구속됨에 따라 전씨 일문에 대한 검찰수사가 일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검찰수사에서 처남 이씨가 마지막으로 구속됨으로써 전씨 일가의 구속자는 무려 10명이 됐다.
그 동안 전씨 친·인척이 치외법권적 권세를 휘두르며 얼마나 부도덕한 범죄를 저질러 왔던 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찌르면 불거져 나오고 들추기만 하면 밝혀지는 죄상을 보노라면 해도 너무 했고 정치권력이 이렇게도 부패할 수 있었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이번 검찰수사는 비록 국정감사를 전후해 여론에 떠밀려 수사를 착수했다는 비난도 없지 않지만 단시일 안에 이 정도라도 성과를 거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그 동안 문제가 되었던 숱한 사건들 가운데 비교적 중요성이 높고 신병구속을 위해 들추기 쉬운 사건만 다루었기 때문에 정작 본격적인 수사는 이제부터 벌여야할 것이다. 검찰이 밝혀낸 친·인척들의 혐의사실을 보면 적용된 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기껏해야 변호사법 위반이나 횡령 등 대부분이 개인 비리에 관한 부분이고 국민들의 관심사였던 정치권력형 비리부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권력개입에 대한 규명이 미흡하고 친·인척들의 비리에 앞장서 압력을 넣고 해결사 노릇을 맡았던 권력 주변 협조자들의 비행이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가 이런 상태에 머문다면 형식상 구속으로 일단락 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여론은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밝혀진 범행이 규모도 대단치 않은 빙산의 일각이고 뿌리는 그대로 놓아둔 채 곁가지 몇 개만 훑었다는 인상을 검찰이 받게된다면 검찰의 명예와 신뢰회복을 위한 모처럼의 수사가 물거품이 되지 않겠는가.
전기환씨의 수산시장 운영권문제만 해도 청와대 민정비서실과 서울시장 등이 압력을 가한 핵심인물로 등장했으나 공소시효가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검찰이 몇 개월 전에라도 수사를 착수했더라면 범죄혐의는 있되 처벌을 못하는 결과는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처벌은 못 하더라도 밝힐 것은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검찰의 수사가 징벌적 기능과 예방적 기능을 함께 갖고 있고 이번 수사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데 있다는 의미에서 비리의 규명과 확인은 철저해야 한다.
공소시효가 소멸되었다고 사실 확인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다.
법적 처리가 어렵다면 정치적·사회적·도의적 책임이라도 물어야할 것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의 의미와 시대적 사명을 깊이 헤아려 수사는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한 점 의문도 없는 명쾌한 수사에 박차를 가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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