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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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게 언캐크였던가. 유엔의 한국전재 그후 기관에서 보냈음직한 황색 부대 위에는 굳게 악수하는 두 손이 선명하게 찍혀 있고 그 속에는 딱딱한 가공유가 엿목판 위의 엿판처럼 가루가 범벅이 되어 굳어져 있다.
시골학교 넓은 운동장 귀퉁이에 마련된 가마솥엔 불이 지펴지고 설설 끓는 물 속에 그 딱딱한 우유덩이를 쏟아 붓는다. 기다리던 줄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깡통을 들고 있던 어린이들이 차례로 가마솥 앞으로 다가서고 선생님이 건네준 우유 한잔을 마시게 된다.
생전처음으로 우유를 먹던 그날 오후수업은 워낙 화장실을 들락거린 학생수가 많아 자연 진행되지 못했다.
전후 초등학교를 다녔던 오늘의 중년세대라면 누구나 그 쓰렸던 아스라한 추억의 갈피 속에 갈무리되어 있을 한 장의 스냅사진이다.
그때라면 도시락을 싸 갖고 오는 학생이 오히려 몇 명되지 않았고 점심을 굶는 학생수가 훨씬 많은 시절이었다. 점심시간을 그냥 넘기는 학생수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운동장에 가마솥이 걸릴 정도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가까운 지금, 근대화다, 공업화 경제성장이다를 거쳐 선진화할 경제까지 등장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점심시간이 되면 슬며시 자리를 떠나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배고픔을 달래는 어린이가 그것도 무려 8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국 초등학생 4백80여만명중 8천명이라면 0.17%에 불과하니 그 옛날의 보릿고개나 전후의 우유급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형편이 나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옛날 우유 먹고 화장실 들락거린 시절은 대부분 학생이 점심을 거르는 불가피한 정황이어서 그것이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만, 한 교실의 모두가 먹는 점심을 단 한 명의 어린이가 먹지 못할 때, 그 어린이가 받는 상처는 그의 평생에 걸쳐 치유될 수 없는 깊은 통한으로 각인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연간 15억원의 예산으로 전국 8천명의 어린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이 보다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부 예비비로 학교급식을 해주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전에 이런 일이 해결될 수 있는 훈훈한 사회분위기가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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