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차라리 최전방이 안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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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차라리 내 아들이 최전방 부대에 있었으면 더 안심될 텐데…."

전주에서 근무하는 전경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탄식이다. 대규모 시위 기사를 볼 때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현장을 지키는 아들이 혹시나 시위대가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다칠까 걱정이 돼서다. 본지의 '전.의경 엄마들의 울분' 기사(5월 3일자 1면)를 본 많은 전.의경 어머니들은 전화와 e-메일을 통해 비슷한 말을 쏟아냈다. "내 아들이 폭력 현장에 내몰려 있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수세에 몰린 공권력이 전.의경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등 하루도 편치 않은 심경을 전했다.

지난해 말 농민 시위 이후 시위 현장에는 낯선 사람들이 등장했다. 과격한 시위 현장에서 아들을 지키려는 '전.의경 부모의 모임'소속 부모들이다. 이들은 "내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모을 수밖에 없다" "공권력을 믿고 내 아들을 맡길 수 없다"며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을 지키고 있다. 어쩌다가 부모들까지 시위 현장에 나서야 했을까. 시위 현장은 정당한 목소리를 외치기보다 쇠파이프와 죽창이 난무하는 아찔한 현장이 된 지 오래다. 화염병이 다시 등장한 시위도 있다. 그런데도 "폭력 경찰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몇 대 맞는 게 속이 편하다"고 말할 정도로 경찰 조직은 움츠려 있다. 부모들이 시위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위대의 눈치를 보는 쪼그라든 공권력을 떠올리면 이들의 '치맛바람'은 차라리 눈물겹다. 아들을 지키겠다고 나섰지만 과격 시위대에 떠밀려 부상을 입는 상황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 경찰들은 폴리스 라인 안의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봐주는 법이 없다. 법대로 강력하게 대응한다.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공공기물을 부수는 행동은 꿈도 못 꾼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운동=시위'라는 인식에 젖어 시위에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이제 국민들은 시위대 눈치나 보는 힘 없는 공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이는 바로 아들 걱정에 어젯밤도 설쳤을 전.의경 부모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정강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