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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과 ‘서용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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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그토록 위중한 병세에 지방선거 일을 왜 맡았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걸까. 아니면 자신을 챙기기엔 정치 현실이 너무도 엄중하다고 통감했던 걸까. 막상 선거 결과를 보곤 급격히 허물어졌다던가.

투병 중의 그가 아끼던 지인에게 정계 입문을 권하며 했다던 말이 있다.

“정치는 의미 있는 일이다. 사람들 신뢰를 못 얻고 우습게 보이는 면도 많지만 세상을 좋게 바꾸는 일이다.”

그러면서 4년 국회의원 시절에 대한 소소한 얘기도 하더란다. “내가 바꾼 법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일하는 보람이다.”

그가 언급한 법안은 널리 알려진 것도 중후한 것도 아니었다. 의료폐기물 전용 용기를 제대로 관리하자는 폐기물관리법이었다. 대선으로 치닫던 2012년 10월 전후 마주했던 현장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당시 의료폐기물을 운반하던 차량 곳곳엔 혈흔이었고 비치된 소독기구라고 해야 가정용 분무기에 담긴 알코올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한 데 이어 이듬해 3월엔 관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료 의원이 그가 없던 자리에서 “의원실에서 만들면 이렇게 정치(精緻)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법안은 2014년 세밑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내세울 요량이었으면 내세울 게 적지 않았을 그였다. 1996년 신한국당 사무처 요원이 된 이래 20여 년 쟁쟁한 보수 정치인들과 함께 정치의 한복판에 있었다. 2012년엔 의원 배지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자락에서 그가 떠올린 건 폐기물 문제였다. 9개월여 투병 끝에 얼마 전 쉰 살의 나이로 숨진 서용교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얘기다. 그는 지난해 말 중앙당 당직을 내놓으며 “새로운 보수우파 정당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썼다.

2000년 홍사덕 선대위원장의 수행비서였던 시절부터 그를 봐왔기에 그가 어떤 궤적의 정치인이었는지 평가할 객관적 거리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 덕분에 보수정치계가 절망에 빠졌을 때 남들보다 먼저 추스르고 일어나 미래를 말하던 그의 용기와 열정, 성숙함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실 보수정당을 떠받치는 이들은 내로라하는 명망가라기보다 다수의 ‘서용교’다.

우여곡절 끝에 김병준 체제가 출범했다. 보수 재건을 위한 험난하면서도 기나길 여정의 출발이다. 보수정당이 다시 설 수 있을까. 결국 산 자들의 의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