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주수준 "외국 못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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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올림픽 문화 예술축전과 함께 88서울국제음악제(9월17일∼10월2일)도 끝을 맺었다.
워낙 집중적으로 많은 행사들이 펼쳐졌기 때문에 날짜가 오히려 모자랐던 몇 주간이었다.
이번 서울음악제에 참가한 외국연주단체 및 연주가들의 수준은 비교적 높은 것이었다. 모스크바필하모니처럼 대단한 화제를 동반한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로잔 체임버 오키스트라나 보자르 피아노3중주단 같은 악단은 오래 전부터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단체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온내셔널 레퍼터리 오키스트라처럼 별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대이상의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경우도 있다.
이렇듯 외국연주단체 및 음악가들의 비교적 수준 높은 연주를 들으면서 느꼈던 소감은 한국의 연주 수준도 그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국제적인 악단이라고 해서 우리가 언제까지나 올려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국제음악제에 몇몇 명성 있는 한국연주가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평자의 말은 일반적인 우리나라 음악가들의 수준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부족한 점은 기량의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끝까지 발휘하여 무엇인가 남다른 자신의 고유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가정신, 혹은 자기확신과 그로부터 결과되는 청중들의 신뢰와 확신이다.
사실 유명한 연주로부터 얻는 감동은 그 기교라든가, 해석의 탁월함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확신을 가진 연주가가 온 체중을 실어 만들어내는 음악의 호소력에서 비롯될 때가 그에 못지 않게 많은 것이다. 예컨대 모스크바필하모니에서도 기교의 문제는 발견되었고 평자의 견해로는 보자르 피아노 3중주단의「멘델스존」『피아노 3중주곡』해석도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보다 더 넓은 그들의 고유한 음악세계를 확연히 느끼게 될 때 가리워 지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연주가들에게서 결핍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교나 해석이기보다 연주가로서 스스로를 자임하는 정신자세, 혹은 철학이라 하겠다.
한국의 청중들이 외국의 연주가에게는 지나치게 박수가 후하고 우리악단의·연주가에게는 대단히 인색한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게된 책임이나 또 이러한 일을 타개해 나갈 책임 역시 연주가가 질 수밖에 없다.
연주가들 스스로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외국유명 연주가를 추종하기 만할 때 이러한 냉대는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청중들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는 우리 악단의 발전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서울 국제음악제에 참가한 단체 중 모스크바필하모니와 보자르 피아노 3중주단, 내셔널레퍼터리 오키스트라 등의 음악이 얼마나 서로 달랐는가 하는 사실은 우리나라 연주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평자로서 이 사실을 해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그렇다면 우리나라 연주계의 고유한 이름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었다고 말하겠다.
즉 그동안 우리가 꾸준히 기량을 키워온 결과 손발과 허위 대는 다 자랐는데 이 육체를 다스려나갈 의식·자의식·주인의식이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다시 오랜 생채와 실천을 필요로 하겠지만 이의 완성 없이는 서구악단에 대항할 수 있는 우리악단의 독립, 우리나라 청중들의 사랑, 선진 음악문화를 가진 나라로서의 명성 등을 획득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서양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서도 우리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연주의 철학과 연주가의 정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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