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우리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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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많은 것을 보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올림픽은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우리 얼굴을 찾아주었다. 서울올림픽을 끝내는 폐회식의 한마당은 한반도 남쪽이 세계 속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5천년 역사를 통해 언제 우리가 그처럼 거대한 무대 위에서 세계를 향해 그처럼 마음껏 소리 지르고, 노래하고, 춤추고, 함성을 쏟을 수 있었는가. 언제 우리가 그처럼 기를 펴고 우리 목소리, 우리 말, 우리 몸짓으로 지구 구석구석 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줄 수 있었다는 말인가.
세계지도 위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나라, 『오, 코리언 워』(한국전쟁)의 나라, 남북이 두 눈을 부릅뜬 긴장의 나라, 손바닥만한 땅 위에서 정치 하나 제대로 못 꾸려가 밤낮 데모나 하는 나라, 투구를 뒤집어 쓴 경찰들이 데모 군중을 뒤쫓아 다니는 나라, 최루탄 연기 속에 눈물 없이는 산책도 할 수 없는 나라, 사전 속에 타협이라는 단어가 없는 나라, 독재와 인권탄압의 대명사로 통하는 나라… 흠잡기로 치면 세계에서 둘째가기 서러운 나라, 바로 그 코리아에서 벌어진 올림픽은 어떻게 되었는가.
더도 말고 그 장엄한 막이 내리는 날, 우리는 우리를 상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였다.『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수 백년 수 천년 잠자고 있던 우리의 전통을 이날 천지를 진동하는 에밀레종 소리와 함께 일 깨웠다. 잠실벌 올림픽을 치른 스타디움도 우리의 위엄과 저력을 담기엔 작아 보였다. 그것은 차라리 신비였고, 비장함이었다.
우리의 단결과 우리의 독창력과 우리의 조직력으로 그 일들을 해냈다.
미국 뉴스위크지의 취재단장 「C·리어슨」은 『LA올림픽을 뛰어 넘고 있지 않은가』하고 벌어진 입을 담을 줄 몰랐다. 세계 사람들은 서울에서 『감사합니다』는 말을 익히고 돌아갔다.
서울 올림픽의 총지출은 31억 달러라고 하지만 지금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폐회식의 그 현란한 의상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불꽃놀이, 그 넓은 벌판을 넘치게 한 풍만감, 부족함 없는 컴퓨터의 신기, 우리는 가난에 찌든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도 놀란 것은 우리의 능력과 인력과 지혜로 그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우리도 몰라보게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제 세계를 다시는 실망시킬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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