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봐도 알아요"…무적의「황금콤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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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나의 소중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손을 꼭 잡고 인고의 세월과 싸워온 자매는 마침내 화려한 꽃 한 송이를 보란 듯 이 피워냈다.
양영자(24·제일모직)와 현정화(19·한국화장품). 이들은 비록 탁구를 인연으로 맺어진 자매지만 가슴속으로 오가는 정은 친 혈육 이상으로 뜨거운, 세계탁구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환상의 복식 조」다.
『정화야, 수고했다』『언니, 고마와요』
말없이 교차되는 둘 사이의 교감은 그들을 올림픽 원년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놓은 가장 큰 힘이었다.
이 둘의 만남은 2년 반전인 86년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영자는 한국여자탁구의 모든 것을 혼자서 외로이 짊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83년 동경세계선수권에서 단식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약 세계최정상 권으로 발돋움한 양영자는 일당백의 대 스타임에는 틀림없었으나 세계최강 중국을 혼자 힘으로 상대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가 84년 봄 간염으로 쓰러진 이후 수시로 병세가 재발됨으로써 제대로 힘을 못쓰게 되자 한국탁구는 암울한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국은 물론 북한에 마저 연전연패, 한국 탁구의 미래는 아예 없는 듯이 보였다.
이때 나타난 선수가 현정화. 당시 고교2년 생이었던 그는 84년 영국주니어오픈 4관 왕에 오른 여세를 몰아 국내의 강호들을 파죽의 기세로 물리치고 순식간에 양영자의 아성을 넘볼 정도의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둘이 첫 대면을 가졌던 제1회 탁구최강전 결승-.양은 관록과 노련미를 앞세워 현을 꺾고 우승했으나 현이 이 경기에서 보여준 기량은 놀랄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중국을 이겨보았으면 하고 한이 맺혀있던 탁구 인들은『이 둘을 복식 조로 묶어 운용해보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품게됐다.
그것은 중국이 단식만큼 복식에는 치중하지 않으므로 드라이브선수인 양과 속공 선수인 현이 서로 호흡만 잘 맞춘다면 그 이상적인 전형의 배합으로 보아 충분히 중국을 꺾을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이들은「한 몸 되기」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86아시안게임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을 때였다.
복식의 승패는 개개인의 기량보다 상호간의 콤비웍에 크게 좌우되는 것.
완벽한 콤비웍은 서로가 서로를 한 몸처럼 느끼지 않으면 이뤄지기 힘들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이 쉽게 친해졌다는 것이다. 같은 방에서 같은 옷을 입게 하며 심지어는 외출 시에도 동행토록 한 코칭스태프의 배려도 있었지만 양의 의젓하고 사려 깊은 성품과 현의 싹싹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은 5년이라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쉽게 둘을 융화시켰다.
둘 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났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전북이리출신인 양과 부산출신인 현은 순식간에 잠시도 보이지 않으면 찾으러 다닐 정도로 가까워 졌다.
기흥 훈련원에서 함께 지내면서 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양의 권유로 기독교를 믿게됐으며 둘 사이의 우정은 신앙생활을 통해 더욱 다져졌다.
양의 어머니 박복섭씨(61·포목점 경영)와 현의 어머니 김말순씨(48·회사원)도 딸들의 인연으로 첫 대면을 가진 후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다.
때마침 양이 안수기도를 계기로 간염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현도 설익었던 기량을 원숙의 경지로 끌어올리게 되면서 한국탁구는 자신감이 붙어갔다. 86년9월 아시안게임-.둘은「서울의 기적」을 연출한다.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따낸 것.
그들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피눈물나는 훈련을 받아왔다.
둘은 모두 백핸드 쪽이 취약한 편. 특히 현은 쇼트와 서브가 위력이 없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나 때문에 지는 일은 없어야겠다.』이들이 3∼5kg씩이나 살이 빠질 정도로 강훈을 감수해 온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됐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훈련 그 자체보다도 주위의 과도한 기대감이 가져다 주는 강박관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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