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대원 품은 환자 유족…“구급차 운전자 처벌 말아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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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119 구급차가 교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당해 옆으로 넘어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건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ㆍPixabay]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119 구급차가 교차로에서 추돌사고를 당해 옆으로 넘어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건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ㆍPixabay]

“환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한 119구급대원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망 할머니 손자 "환자 목숨 구하려한 구급대원 책임 없다"

2일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교통사고 당시 숨진 이송 환자 김모(91ㆍ여)씨 유족의 입장은 분명했다. 아직 장례 절차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119구급대원들을 걱정했다.

사망한 김씨의 손자 이모(43)씨는 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고생한 구급대원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민들이 올린 선처 요청 게시물과 같은 입장이다. 부검을 거친 김씨의 장례 절차는 이날 마무리된다.

지난 2일 오전에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사고당시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사고의 여파로 튕겨나간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보살피기 위해 기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일 오전에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사고당시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사고의 여파로 튕겨나간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보살피기 위해 기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이씨의 할머니 김씨는 2일 오전 10시19분쯤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119구급차는 3분 만에 도착했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지만 구급대원들은 일말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인근 병원으로 김씨를 이송하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히는 교통사고가 났다.

김씨의 사망 원인이 호흡 곤란 증세인지, 사고 충격인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119구급차가 신호 위반을 했기 때문에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숨진 김모 할머니의 손자 이씨는 “소방서 관계자들이 (죄책감 탓인지) 할머니 조문을 오셨다”며 “(하지만 유족은) 고생하신 구급대원들이 사고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119구급차 운전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사고 순간을 담은 블랙박스에 따르면 구급대원들은 사고 충격으로 구급차가 쓰러졌지만 기어서 환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를 본 유족은 사망한 할머니의 부검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처벌과는 별개로 김씨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 부검을 했다. 다만 사고 전 구급대원들을 통해 김씨의 상태를 확인한 의료진도 이미 소생 가능성을 낮게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김씨의 유족에게 심정지 상태라는 사실을 알리며 "거리가 먼 대학병원이 아닌 인근 병원에 신속하게 가는 것이 낫다"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지난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사고당시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교차로에서 발생한 119구급차 사고당시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경찰은 5일 오후 사고 당시 119구급차량을 운전했던 대원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도로교통법상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자동차는 위급시 신호위반 등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범칙금 등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이어질 경우는 원칙적으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관련 법률상 면책 규정이 없어서다. 다만 경찰청은 구급차와 같은 긴급자동차가 낸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전치 3주 미만의 피해를 입었을 때, 관련 상황을 참작해 입건하지 않는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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