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니스」의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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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천여 관중의 함성속에 미국의 노장 「그레그·루가니스」선수(28)가 천천히 다이빙대위로 올랐다. 19일 오후6시30분 잠실수영장 남자다이빙 스프링보드경기.
세계각국에서 모인 35명의 선수가운데 12명의 결선진출자를 가려내는 예선 11라운드중 10라운드.
높이3m의 보드위에 올라선 「루가니스」가 다친 머리가 신경 쓰이는지 멈칫멈칫하는동안 관중석에선 안타까움의 탄성이 흘렀고 이를 의식한듯 「루가니스」는 환한웃음을 지어보이며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휘청, 다이빙대를 숫구친「루가니스」가 환상적인 몸짓으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잠시후 전광판에는 이날의 최고점수 (87·12)가 비쳐졌다. 정적…관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시작했다.
그는 그보다 30분전의 9라운드에서 불의의 사고를 입었다. 「뒤로 두바퀴반 돌기」를 마치고 떨어지는 순간 자신이 도약했던 보드모서리에 뒷머리를 부딪쳤다.
피를 훌리며 물속에서 나왔고 달려나온 코치가 부축해 진료실로 옮겼다.
관람석의 미국 응원단에선『노, 노!』 비명같은 탄성이 쏟아졌다. 경기 포기설까지 돌았던 「루가니스」는 진료실에서 『아이 캔』을 외치며 경기에 나갈뜻을 굽히지 않았다.
네바늘을 꿰매고 끝내 경기에 나서 최종 11라운드에선 앞선2명을 추월, 3등으로 결선에 진출했다.
『그가 자랑스러워요』「사고에 울고, 재기에 울어 두 번 울었다」는 한 미국인 부인이 붉어진 눈시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을때 모든 관중도 같은 느낌인듯 했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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