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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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가 살고있는 일상적인 삶이란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그래서 나날의생활이 반복되고 예견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적 삶이 고통스런 것은 그 진부함이 자신의 삶의 전부를 형성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만들거나, 예견되지 않은 사건이 일상적 반복을 깨뜨리면서 육체적·정신적 폭력으로 작용하는 경우다.
이 두 가지 고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것인지 말할 수 없지만 작가는 그 고통의 정체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질문한다. 임철우의 『붉은 방』(『현대문학』8월호)은 두 가지 체험을 한 주인공을 통해서 일상적 삶의 허구성과 그 고통의 뿌리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시인을 꿈꾸었지만 박봉의 교사로 나날의 생활에 쫓겨온 주인공은 어느 날 폭력의 체험을 한다.
그 체험은 그가 살고있는 삶의 평온이 바로 그 폭력에 의해 가장된 것임을 주인공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선한 자와 악한 자로 구분하지 않고 그 폭력의 역사적·사회적 구조와의 미를 추구한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가해자가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된 것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6·25체험에 의해서다.
일가들이 학살당하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마저 폐인이 되어 잃어버린 주인공에게는 그 폭력의 체험이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상처는 종교로도 치유되지 않고 시간으로도 치유되지 않고 있어 그는 폭력의 행사에 어떤 가책도 갖지 않는다. 피해자 주인공과 가해자 주인공의 시점을 동시에 빌어 옴으로써 이 작품은 과거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고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역사의 악순환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다.
또 분단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대림이 사회에 폭력의 구실을 제공하고 그로 인해 입게된 개인의 상처는 아직도 비극적 삶의 원인이 되고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문학과 사회』여름·가을호)도 그러한 상처의 기록이다.
전쟁 직후 고향과 출신이 다른 다섯 가구가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어린 주인공의 고통스런 성장기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삶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지만, 그것이 회고담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상처가 <이산가족 찾기>나 <간첩사건> 등으로 아직도 아물지 않은데 있다.
바로 이 상처의 현전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사회의 갈등과 대림의 근원을 보여주면서 갈등의 해소와 상처의 치유가 사회의 개방과 분단의 극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소실이 구호가 아닌 탐구이며 당위가 아닌 감동임을, 그래서 일상의 허위의 멋을 벗겨낼 수 있음을 이 두 작품은 입증하고 있다. 김치수<이대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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