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실로 다가온 농산물 개방 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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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칸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나온 선언문 초안은 농산물 시장개방이 현실로 닥쳤음을 말해준다. 일부 조정이 있더라도 어떤 경우든 한국의 농업은 관세와 보조금, 시장개방폭 등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더욱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농민이 입을 충격은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보다 훨씬 급속하고 거셀 것이다.

이번 회의는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의 자살 등 각계의 필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은 극히 제한적이며, 시장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재확인시켜줬다.

우리는 이런 냉엄한 국제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현실적 인식하에 농민 피해는 최소화하고 공산품 분야에서는 선진국의 시장 개방을 가속화해 한국 경제를 살려나가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시급한 것은 후속 다자.양자간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확보하는 데 협상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쉽진 않다. 또 마늘.양파.고추 등 관세율이 1백%가 넘는 농산품이 1백42개나 되는 점을 감안할 때 설사 개도국 지위를 확보하더라도 상당한 충격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개도국 확보가 관건이다. 별도로 진행될 쌀 협상에서도 우리의 요구가 최대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개방의 대세 앞에서 우리 농업이 살아남을 근본 대책은 경쟁력밖에 없다. 지난 10여년 간 정부는 농업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농업 경쟁력은 되레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부는 품종 고급화와 대체작물 개발, 소득보전 직불제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함께 농촌지역의 복지.의료.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농업 개방의 불가피성과 납득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 농민의 협조를 얻기 위한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농촌 문제를 더 이상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지 말고 한국 농업과 농민이 살 길을 찾는 데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