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짤막한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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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경원(1954~ ) '짤막한 노래'

정직하고 부드러운 빵

아름다운 푸른곰팡이를 피워내는군

자신이 썩었음을 알려주는군



부패와 발효는 썩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인간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부패는 고약하다. 냄새가 진동한다. 병균의 온상이다. 세상을 어지럽힌다. 발효는 다르다. 김치에서 홍어.된장.젓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곰삭으면서 깊은 맛을 낸다. 그런데 정직하고 느린 발효 음식은 자취를 감추고(공장으로 들어가고), 바코드를 찍은, 잘 썩지 않고 빠른 음식들이 판을 친다. 방부제 탓이다. 정직한 빵은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빵이다. 방부제가 없어 썩는다. 당연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방귀깨나 뀌는 자들이 저지르는 부패는 들먹이지 말자. 여간해서는 자기가 썩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방부제 덩어리인 저 살찐 빵, 빵덩어리들은.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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