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가족회의, 아빠 역할은 진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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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의에서 아빠 (혹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진행사회자일 따름이다. 나중에 말해야 한다. 어른이 먼저 결론을 내려버리면 아랫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자녀가 둘이라면, 1차 발언순서는 ①작은 아이 ②큰 아이 ③엄마다. 아빠는 아직 말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의장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2차는 ②, ①, ③ 순이다. 2차 발언 때도 아빠는 입을 다문다. 3차는 ③, ①, ② 순이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이 세 번 정도 발언하게 되면 웬만한 가족문제는 거의 해결된다. 어느 정도 풀릴 무렵 아빠가 간단히 마무리 한다. 그때 자녀들은 어떻게 느낄까. "야. 우리 아빠, 말씀 잘하신다." 단칼에 두 동강을 내는 격이다. 칼은 여러 번 휘두를 필요가 없다.

특히 자녀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을 때 부모가 섣불리 참견하는 것보다 자녀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발언하게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게(反省) 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발언시간을 지키는 일이다.

회의의 공정성을 위해 발언순서 못지않게 발언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발언시간은 2분 혹은 3분으로 정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발언할 때마다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오른 팔을 들어, 그리고 종료되면 두 팔로 가위 표시를 알려준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 안에 발언을 끝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첨예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는 더더욱 이렇게 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풍부하게 하는 말, 그것이 잘 하는 말이다.

가족회의를 열 때마다 모두가 개인별 가족회의 노트를 가져온다. 노트에는 발언자의 이름과 함께 발언 내용을 메모한다. 가족 모두 각자의 노트에 메모하다보니, 자연스레 메모하는 습관과 경청 능력이 길러진다. 회의가 지지부진 전개될 리가 없다. 보통 회의는 의제를 결정하느라 옥신각신 시간을 끌게 마련이다. 의제 처리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①상정된 의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다루면 집중처리, ②하나씩 다루면 순차처리, ③한꺼번에 다루면 일괄처리라 한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일괄처리다. 일괄처리를 잘하면 다른 방식의 처리도 잘 할 수 있다. 우선 가족 모두 각자가 하고 싶은 말(議題)을 하게 한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다루다가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면 훨씬 재미있다.

가족회의를 하면서 온 가족이 눈물을 훔치며 울어 본 적도 있다. 그 일로 인해 우리 가족의 관계가 더 돈독해진 것은 물론이다. 소통의 위력 때문이다. 그 후련함을 잊을 수 없어 가족회의를 즐긴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 (wontak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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