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없는 평화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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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일 저녁 대학로.
『전쟁반대 평화협정』『미국반대 자주통일』-.
대형깃발과 플래카드를 앞세운 2천여 군중의 긴 행렬이 요란한 길놀이 장단속에 속속 밀려들었다.
꼭 1시간30분전 구서울고를 출발, 종로로 서울한복판을 가로질러온 재야주최 「통일염원 평화대행진」행렬.
참가자들도, 함께 따라온 경비경찰들도 모두가 땀에 젖은 채 안도하는 모습.
잔뜩 긴장했던 연도의 시민들도 비로소 표정을 풀었다.
원천봉쇄와 격렬시위, 최루탄과 화염병 공방으로 상징되었던 재야측의 도심 대규모행사가 처음으로 최루탄없이 치러진 것이다.
우려됐던 「도로진출-최루탄난사」장면은 분별과 자제가 한결 돋보인 주최측과 「평화적 집회·시위보호」라는 경찰의 약속이 다함께 지켜지며 보기좋게 사라졌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정신으로….』 결의문낭독에 이어 밤11시까지 기념공연과 풍선날리기 등 이날의 행사를 모두 마친 참석자들은 밤비를 맞으며 해산했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할걸….』 홀가분한 표정의 경찰간부가 차에 오르며 독백처럼 말했다.
이날 행진으로 종로통엔 약간의 교통체증과 부분적인 몸싸움이 었었을뿐 큰 불편은 없었고 혼란은 더욱 없었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평화적 집회·시위를 통해 각기 다른 목소리의 주장을 펼치고 경찰은 이를 인도하는 모습이 남의 나라 풍경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저녁, 기자도 발길이 가벼웠다. <김석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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