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트럼프의 대북 초강경파 기용 가볍게 보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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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 대사를 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을 끌고 가는 분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했다. 지명의 의미를 가급적 깎아내리고픈 속내가 느껴진다.

그의 말대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디테일에선 실무 총책임자인 볼턴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언급하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을 전제조건으로 달거나 핵실험·미사일 발사 동결로 비핵화의 범위를 축소한다면 볼턴은 트럼프에게 “사기극이니 절대 수용하지 말라”고 건의할 공산이 크다. 정부는 볼턴을 기용한 트럼프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냉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볼턴은 뉴욕타임스가 “그만큼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고 평할 만큼 초강경파다.

그동안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허버트 맥매스터 전임 국가안보보좌관과 핫라인을 확보해 비교적 원만하게 소통해왔다. 그러나 맥매스터보다 훨씬 북한에 강경하고 좀처럼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볼턴이 후임에 지명된 만큼 청와대는 백악관 기류를 예의주시하면서 볼턴과의 공조체제를 이른 시일 내에 구축해야 한다.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에는 북한의 속내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북한엔 “이번에 확실하게 비핵화에 나서지 않으면 살아날 기회가 없다”고 설득해야 한다. 혹여 정부가 북·미의 입장 차를 얼버무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볼턴의 모니터링에 걸려 북·미대화는 물 건너갈 우려가 크다. 동시에 한·미 간 신뢰도 상실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을 공산이 크다는 점을 직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