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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축제, 월드컵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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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가수 싸이의 노래 '환희'에 나오는 가사 중 일부다. 뉴스를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외설영화보다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건 뉴스'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뜨끔해진다. 그래, 맞는 말이다. 정말 '청소년들이, 내 아들딸들이 뉴스를 보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뉴스를 보면서 자연스레 거짓말하는 방법도 배우고, 사기 치는 방법도 배우고, 오리발 내미는 요령도 배우고,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이기는 게 최고'라는 사실도 배우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도 배우고, '권력에 아부하면 출세한다'는 것도 배운다.

한때 신문사에서 '미담 기사 발굴 강조 기간'이 있었다. 뉴스라곤 매일 정치인들 싸움질하는 이야기나, 살인.강도.유괴사건 같은 거밖에 없으니 "신문 보기 싫다"는 말들이 튀어나오고, "좀 밝은 뉴스를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러나 '누가 선행을 했다'든가 '평생 모은 재산을 학교에 기부했다'든가 하는 기사에 감동을 느끼는 것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 기자를 하고 있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올해만 해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거의 매일 쏟아진 금메달 소식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일본과 미국을 격파하면서 국민에게 준 기쁨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지 않은가. 이제 두 달여만 지나면 독일 월드컵도 벌어진다. 또 어떤 기쁜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주변에서 "요즘 기분 좋은 일은 스포츠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선수도 아니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독자에게, 국민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라는 생각에.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기분 좋은 일이 스포츠밖에 없다니. 이 무슨 불행한 말인가.

혹시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가 '골치 아픈 일을 잊어버리기 위해서'거나 '그 순간만큼은 정치나 경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라면? 스포츠를 통해 얻는 기쁨이 '모르핀 효과'라면? 그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하게 된다.

우리는 다행히 4년 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축제'를 경험했다. 누가 단체를 조직한 것도 아니었고, 누가 앞장서 이끈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자발적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즐긴 축제였다. 멍석만 깔아 주면 잘 놀 수 있는데 멍석을 깔 기회가 적은 게 문제다. 6월 9일 개막하는 독일 월드컵은 또 한 번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다.

사실은 그 전에 한 번의 기회가 더 있긴 하다. 바로 5월 31일 지방선거다. 선거가 축제의 기회라고? 우리나라에서 선거가 축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벌써 상대방 흠집 내기가 성행하고, 과열 조짐도 보인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흙탕물 튀기기 선거를 치른다면 언론은 그 내용을 전달할 것이고, 그 뉴스를 보는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는 정말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실천 가능한 정책 선거를 하자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퍼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쇼'하지 말고 우리도 한 번 선거를 축제처럼 치러 보자. 온 국민이 지방선거라는 작은 축제를 거쳐 독일 월드컵이라는 큰 축제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손장환 스포츠부문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