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없이 내미는「전가의 보도」|-미 포도주 301조 제소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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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설마」했던 포도주조차 미국의301조 덫에 걸려 들었다.
지난 5월 서울서 열렸던 양국통상실무회담에서 우리측이 충분한 성의표시를 했기 때문에 정부관계자들도 별일 없을 것으로 안심했었는데 또다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격이 되어 버렸다.
지난번 회담에서의 미국측 요구는△포도주의 관세를 현행1백%에서 50%로 올하반기부터 내려주고△91년예정인 쿼타의 완전자유화를 앞당기는 한편△포도주수입상의 확대와 수입검사절차의 간소화△기타 과실주의 추가개방등을 요구했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관세를 70%로 내리고△쿼타철폐시기를 1년앞당겨 90년으로 하며△기타 과실주중에서 와인쿨러와 버머드를 추가 개방하고△그밖의 요구사항도 거의 수용하겠다고 밝혔었다.
이정도면 줄수 있는 것을 다줬다는게 우리 정부 입장이었고 회담을 끝내면서 미국측 역시 관련 업계들이 불만스러워하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성과로 간주하고 돌아갔었다.
비단 포도주뿐만 아니라 담배나 지적소유권등 중요현안에서 미국측 요구를 거의다 수용해줬기 때문에 미국측의 태도가 지난번실무회담을 계기로 한결 부드러워지지 않겠느냐는게 우리정부의 판단이었다.
그동안 대충 챙길것은 챙겼고 더구나 한국내에서의 반미감정도 고조되고 있으니 이참에 대한통상태도도 종전보다 다소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사실 없지 않았다.
따라서 미포도주업계의 301조 조사개시 요청을 USTR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이같은 기대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표시했던 우리측의 성의도 성의지만 미국측요구의 핵심인 관세율 50%인하시비는 실질적으로 미국자신한테 아무런 실익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측의 입장이 금년하반기부터 현행관세 1백%를 70%로 내리고 내년1월부터는 우리 자체의 관세개편계획에 따라 다시 50%로 인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결국 6개월을 못참겠다고 301조를 들고 나온셈인데 조사를 실시해 봤자 6개월이상 걸리니 결국 한국의 대미감정만 자극할뿐 아무런 실속도 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관계자들도 미국측의 이번 조치 (포도주 301조발동결정)에 대해서만은 전에없이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으례 나오는 미국정부의 반응은『업계의 설득에 실패했다』는 식의 발뺌이다. 결국 우리만 순진했다는 이야기다.
포도주에 대한 301조발동이 미국에 아무 실익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실질적인 손해는 없다. 다만 미국의 통상정책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다 확실하게 일깨워준 셈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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