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참 총장의 퇴임사|김현일<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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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일 육본광장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
퇴임하는 박희도 전 참모총장의 전역식을 경한 이날 행사장에는 뭐라 형언키 어려운 미묘하고 착잡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나 36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는 박 전 총장의 개인적 감회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박 총장의 전 역사에서 그 같은 분위기는 끝내 말로 구체화됐다.
『바보스러울만큼 충직스럽게 한길만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들을 대변하여, 그동안 군인이었기에 굳게 다물어 왔던 심층 속의 말 한마디를 끝까지 참지 못하고 토한다』고 전제한 다음 박 장군은 비감이 서린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근간에 이르러 급진좌경을 중심으로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이름아래군의 존재목적과 특성은 외면한 채 사회일반의 가치척도를 무분별하게 적용하여 군을 매도하고 분열시키려는 언행은 군의 단결을 크게 저해….국민의 생존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군은 국민다수의 의사가 수렴되는 순간까지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하는 보수적인 집단….그런 저변에서 나오는 군인만의 특성을 반민주·반역사적이라고 매도하는 무책임하고 무지한 선동적 모함에 군은 국가의 장래를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군인의 상징이며 호국영령의 숨결이 담겨 있는 철모와 군화가 선거 유세장 연단 위에서 무참히 능욕 당하는 장면을 보며 백보를 양보해도 용서할 수 없는 울분을 느껴 왔다.』무거운 침묵이 육본광장을 누르고있는 가운데 연설은 계속됐다.
『그러나 군이 있었기에 나라가 생존했고…군인만큼 생사를 초월해 희생과 봉사로 나라 지키는 책무에 충실한 집단이 없음을 대다수 국민은 잘 알고 있고 말없이 성원해 주기에 우리 군은 태산같은 장중함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박 장군은 『다시는 이 나라에 외침 아닌 내환으로 군이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로 소감의 토로를 끝냈다.
『노태우 대통령각하께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뜨거운 격려와 성원을 보내야할 것』이라는 신임 이종구 총장의 취임사와 곁들여 군과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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