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복고풍」|이춘성<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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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신문을 펼쳐 보면「세금」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게 많다. 개중에는 특히 국세청의 공식발표 기사가 많아졌다.
5공화국시절에는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다. 당시에는 대형금융사고라든가 비리관련사건이 터져 국세청의 뒷조사가 있더라도 수사 중간발표라는 게 없었다. 국민들이 그 속사정을 궁금해할 것은 불문가지의 일인데도 말이다.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당시 군 개혁주도세력 출신인 국세청의 최고 책임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기자들의 추궁을 따돌렸다. 『납세자인 국민이 가뜩이나 세금을 뜯긴다고 생각하는데 괜히 신문에「세금」자가 많이 나가면 그때그때 기분만 더 언짢아진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고지된 세금만 내는 게 속편한 일이 아닌가.』
웃사람의 생각이 이렇다 보니 실무진의 언론 관도 뻔한 일. 해마다 때가 되면 하는 이른바 「캘린더 세정」에 대해서도「보안」이라며 함구했었다.
작년에는 매년 10월이면 공식 발표해 오던 고액납세자명단까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그러잖아도 저임금근로자들이 임금인상투쟁을 벌이고 있는 판에 고액납세자명단을 공개하면 계층간 위화감만 더하지 않겠느냐』는 변명이었다.
이처럼 목에 힘이 들어갔던(?) 국세청에 6공화국이 들어서고 세정의 최고책임자가 민간인출신으로 바뀌면서 새바람이 불고 있다. 신임 서영택 청장의 『관 편의위주 세정을 대민 편의위주로 바 꾸라』는 지시 때문일까.
그러다 보니 국·과 마다 다투어 자료를 내놓기 시작했고 자연히 신문에도「국세」라는 글자가 많아졌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이 이쯤 달라졌는데도 13대 임시국회 개원을 며칠 앞둔 요즘 국세청 내에는 복고풍의 주장이 대두돼 관심을 끌고 있다.
『작년에도 안 했는데 굳이 고액납세자명단을 공개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이 그것이다.
노사분규바람이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 괜히 자료를 내놓아 이를 부채질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과거 잘못된 점을 청산하겠다는 의지에 역행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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