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의와 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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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일문제가 국내 또는 남북간의 중요문제로 등장돼 있으나 아직 질서를 잡지 못해 난항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통일논의의 개방화, 대북 접촉 창구의 일원화를 제시했음에도 대학생들은 6월10일 판문점까지 행진하여 북한학생들과 만나겠다고 나섰다.
한편 북한은 우리 정부의 남-북한 고위당국자회담 제의서한의 접수를 거부하고 우리 쪽 대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
정부는 각료 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당국자회담을 6월중에 열어 올림픽 공동참가, 인적교류, 대화재개 등 남-북 현안문제를 토의하자는 내용의 국무총리 서신을 3일 판문점을 통해 북에 보내려 했으나 평양 측은 접수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북한은 최근 우리 정부와의 접촉을 회피하면서 재야와 운동권의 통일논의에는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통일방안을 즉각 지지하고 대학생들의 판문점회담에 호응한 것으로도 명백해졌다.
그것은 통일문제를 진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지연시키며 나아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통일문제에서 당면한 1차적 과제는 내부질서의 정립이다. 정부는 논의의 개방화를 공식화함으로써 과거보다 진보된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질서가 없다면 개방은 오히려 혼란을 불러올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통일논의의 체계를 세워 국내 모든 세력과 계층이 함께 참여하여 통일 논의를 필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논의는 활발히 하되 어디까지나 국민적 합의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북 접촉의 창구를 일원화한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라 볼 수 있다. 앞으로 남-북 대화가 활발해지면 그 접촉은 적십자, 경제, 문화 등 사회각계각층별로 다원화 될 것이다. 그러나 창구만은 정부로 일원화할 때 비로소 질서가 잡혀 능률화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생들의 판문점행진이나 일부 재야 종교단체의 성급한 통일제의는 신중해야 한다. 통일문제는 그 내용에 못지 않게 절차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판문점행진의 경우 그것은 결코 보통의 일이 아니다. 대학생들이 그런 행동을 하려면 먼저 국민적 합의를 거치고 정부라는 창구를 통해 평양과 합의돼야 한다.
만일 이런 절차가 생략된 채 일부대학생의 주동으로 판문점으로 향한다면 현실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문제만 제기하여 오히려 통일논의를 지연시키고 진행중인 민주화마저 방해할지 모른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의 성실성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려 한다면 지금 우리사회 저변에서 일고 있는 재야활동에 편승하여 우리 사회를 혼란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제의한「남-북 고위당국자회담」에 응해야 한다. 그것이 민족공동체를 온전 시키며 분단문제를 체계적·효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길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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