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흥미진진한 해리 포터, 살짝 뒤집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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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해리 포터(右)와 그 의 집 요정 도비.

해리 포터 철학교실
톰 모리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재인, 358쪽, 1만5000원

이런 유형의 제목을 붙인 책은 일단 의심이 간다. 원작의 인기에 기대보려는 생각에 급조한 경우가 많아서다. 저자가 여러 명일 경우 특히 그렇다. '톰 모리스 외 16인의 철학자'가 지은'해리 포터 철학교실'역시 이런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다. 속편이 나올 때마다 세계 출판시장을 들었다 놓는 '해리 포터'시리즈에 대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독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에 대한 비판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 청소년 독자가 많은 소설이기에 이같은 제안이 더욱 반갑다.

이 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에 대한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다. 대표적인 것이 마법사들의 집안 일을 돌보는 '집 요정' 문제다. 소설에서 집 요정들은 사실상 노예다. 이 부분을 쓴 스티븐 패터슨(미국 매리그로브대 조교수)은 "이 시리즈에는 끔찍할 정도로 많은 차별 행위가 엿보인다"고 말한다. 말포이 같은 악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리 포터 같은 '착한' 인물들까지 노예 노동에 눈을 감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는 얘기다.

해리의 절친한 친구 론은 심지어 "(집 요정은) 노예로 지내는 걸 좋아한다"('해리 포터와 불의 잔' 2권 60쪽)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수 백년간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았던 서구인들의 자기 합리화와 거의 비슷하다.

패터슨은 "마법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죽음을 먹는 자들'과 선한 세력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가하게 집 요정의 권리나 읊어댈 때가 아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안보'를 위해서 '사회 정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시리즈의 저자 조앤 K 롤링도 주요 등장인물인 덤블도어 교수의 입을 빌어 이 문제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우리 마법사들은 오래 전부터 다른 종족들을 홀대하고 지나치게 부려왔지.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5권 241쪽)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해리 포터'시리즈의 남녀 평등 사상을 해석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미미 글래드스틴(엘파소 텍사스대 교수)은 "소설 속에서 좋은 사람과 악인, 능력있는 사람과 무능력자의 구분은 성별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진정한 양성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증거란 것이다. 그는 마법사들의 운동 경기인 '퀴디치'가 남녀 혼성팀으로 치러지는 것도 이같은 사고 방식의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이 책에는 '철학 교실'이란 제목답게 인식론.존재론 등 본격적인 철학 주제를 다룬 글들도 실려 있다. 아쉬운 점은 글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다는 점이다. 어떤 저자의 글에는 성인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고, 어떤 저자는 초등학생에게 도움이 될 법한 충고를 하기도 한다. 순서대로 읽는 대신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부분만 골라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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