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총과 기름의 신밀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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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00여 명의 공식.비공식 수행원을 이끌고 이 행사의 성공적 출발을 직접 축하했고, 후진타오 등 중국 지도부는 겉모습이 비슷한 판다와 새끼 곰이 상징하듯 양국은 '형제 국가'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2000년 3월 대통령 당선 이후 이번까지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또 후진타오는 2003년 국가주석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러시아를 찾은 것을 비롯해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의 개별 정상회담 등을 통해 푸틴과 교감해 왔다. 지난 1년 사이 양국 정상이 만난 횟수만 다섯 번이다.

양국 정상의 빈번한 만남으로 보나, 지난해 8월 중국 산둥 반도에서 가진 중.러 연합 군사훈련으로 보나 양국은 예전의 냉랭한 이웃 경쟁국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를 넘어선 '형제국'의 반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2일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뒤집힐 수 없다"고까지 밝혔다.

중.러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22건의 협력협정 문건에 서명했다. 여기엔 러시아가 중국에 5년 내 두 개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로 한 것과 원자력 협력 강화를 위한 각종 합의도 포함된다. 국제문제에 대한 연대의 모습도 확실히 보였다. 중국 언론이 '동맹보다 강한 유대' '이웃 이상의 관계' '신동맹'이라고까지 할 만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판다와 새끼 곰이 완전히 다른 종(種)이며 성격과 식성도 다른 것처럼 양국 관계가 형제국의 단계라고만 판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상 간 교류는 뜨겁지만 양국 국민 간 우호의 감정은 여전히 냉랭하다. 러시아의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와 정주하는 중국인 문제가 심각하다. 군부는 여전히 과거 국경분쟁으로 인한 무력충돌과 4300㎞에 달하는 국경선을 사이에 둔 긴장감을 완전히 거두지 않고 있다.

1990년대 말 러시아 총리였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러시아-인도-중국 간 3각 동맹, 소위 지정학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3국은 아직 '연대(連帶)'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동맹으로 나아갈 만큼 새로운 이익의 크기가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다. 러시아는 이번에도 중국이 확약을 받아내려 했던 극동 석유 파이프라인 노선에는 끝까지 확답을 주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어느 한쪽에 대한 일방적 우위를 인정하면 현 단계에서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가스 공급에도 많은 난관이 있다. 가격 문제는 접어둔다 해도 최대 시장인 서유럽의 불안을 먼저 해소시켜야만 한다. 날로 늘어나는 서유럽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연간 1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최근 외국의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까다롭게 하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석유는 여전히 기차로 수송하고 있고, 파이프라인에 대한 '트란스네프티'의 독점권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여기다 군수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군부를 달래려면 첨단무기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러시아 군부는 차세대 첨단무기를 더 이상 중국으로 이전하는 데 난색을 표한다.

총과 기름에 기초해 중국과 러시아는 신밀월을 이뤘다. 신밀월은 상당 기간 계속되겠지만 동맹화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양국이 배타적인 동맹으로 가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사회는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러시아와 중국을 개방과 협력의 공간으로 더 끌어내야 한다.

김석환 논설위원 겸 순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