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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떠난 뒤 처리된 선거구 획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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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승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송승환 정치부 기자

송승환 정치부 기자

‘땅땅땅’. 1일 새벽 0시 5분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전체회의에서 ‘뒷북’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처리한 법안은 6월 지방선거의 선거구를 획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다. 그러나 법안을 최종 통과시킬 2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는 10분 먼저 막을 내린 상태였다. 선거구 획정이 또 미뤄진 것이다.

헌정특위 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달 28일 밤 11시 55분 회기 종료가 임박하자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어쩔 수 없이 산회를 선포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민께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오늘 밤에는 처리할 수 있게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본회의장에서 대기하던 의원들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당초 이날 오후 8시 50분 여야는 헌정특위 소위에서 선거구 획정안에 합의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합의를 중재했기 때문에 이날 자정까지는 본회의의 통과가 가능했다. 하지만 오후 10시 18분 열린 헌정특위 전체회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합의안에 문제를 제기했다. 안상수 의원은 “인천의 지역구 별 광역의원 수 증감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위 멤버였던 나경원 의원도 “인구증감 원칙상 시도의원은 최대 17석 이상 늘면 안 되는데 27석이나 증가한 게 납득이 안 된다”며 합의안을 비판했다.

오후 11시가 되자 초조함이 번졌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의원들 전원이 지금 (본회의장에서) 헌정특위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며 “그동안 그 많은 세월을 허송하고 이제 와 이러는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오후 11시 6분 전체회의는 맥없이 정회됐다. 자정에 다시 열린 전체회의에서 결국 법안이 처리됐다. 소위 통과안과 달라진 건 없었다.

원내지도부 합의안에 제동을 걸었던 의원들의 지적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지도부 합의가 마음에 안 들어도 처리불발에 따른 파장을 감안해 대승적으로 넘어가거나, 동의할 수 없으면 표결 처리를 요구하는 게 옳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2일부터 시작하는 6월 지방선거의 광역의원 예비후보자 등록은 선거구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행될 판이다. 뒤늦게 여야는 3월 5월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예정에 없던 혼란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게 됐다.

송승환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