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영세기업 외면한 근로시간 단축, 땜질 보완책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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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어제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입법 논의가 시작된 지 5년 만에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다. 그만큼 진통이 컸던 사안이다. 이 법안이 오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장시간 근로 관행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16년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2069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305시간 더 길다. 정부는 근로시간이 줄면 국민이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고 신규 채용도 촉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엄혹한 현실이다. 지금 영세기업들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충격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52시간 제한 이후 기업이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연 12조1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 비용의 70%는 중소기업이 떠안게 된다. 근로 단축으로 부족해진 인력 26만6000명을 추가 고용하고 법정 공휴일도 유급휴무로 전환되는 데 따른 비용이다.

이를 고려해 환노위는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 7월부터 시행하되, 50인 이상과 5인 이상은 각각 2020년 1월과 2021년 7월로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한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쉴 때도 생산 납기를 맞추기 위해 공장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를 더 고용할 여력이 없으면 자동화만 가속화할 수 있다. 근로 단축으로 영세기업 근로자의 실질 임금 감소도 우려된다. 본회의에서는 이런 현실을 정밀하게 반영해서 영세기업에 대한 탄력적 예외조항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두더지 잡기식 땜질 보완책에 급급한 최저임금 혼란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