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뒤집기식 「탁상행정」|장성효 <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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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건설부에는 아파트의 재건축문제를 둘러싸고 한토막의 해프닝이 벌어졋다. 그러나 진상을 알고보면 말이 좋아 해프닝이지 당해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건설부는 주택건설촉진법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아파트재건축허용범위를 당초 20년 이상된 아파트로 주민 (소유자) 들의 80%가 찬성할 경우로 제한했다가 지은지 20년이 안된 아파트도 주민들이 l백% 찬성할 경우 헐고 다시 지을수 있도록 방침을 변경했다.
사단은 거기서 났다. 발표가 나가자 신문사에는 연일 볼멘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자고나면 아파트값이 2백만∼3백만원씩 뛰고 거기에 덩달아 전세값도 오르고 있으니 세입자들은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세상이 달라졌다더니 정부가 있는 사람들만 편들기는 마찬가지예요.』
바빴던 것은 신문사뿐만 아니어서 주무부처인 건설부는 장관집이나 주택국장집에 시도 때도 없이 한밤중에도 항의전화가 걸려와 곤욕을 치렀다.
결국 건설부는 시행령의 입법예고가 끝난 지난10일 문제의 조항을 삭제, 당초 원안대로 20년이상된 아파트만 재건축을 허용키로 하고 현재 이를 법제처와 심의중이다.
아파트재건축문제는 사실 집주인과 세입자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다 상반된 견해가 있어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우선 『내집을 내가 헐어 다시 짓겠다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모든 행정이 민주화·지방화되는 추세에 과거처럼 중앙부처가 모든 정책의 기준을 정해 하부관청을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당초방침을 바꾸었다』는게 건설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재건축 연한제한이 없어져 여기저기서 낡지도 않은 아파트를 헐게 될경우 당장 잘 곳을 잃게 될 세입자대책이 문제다. 또 집없는 서민이 40%를 넘는 실정에 멀정한 집까지 헐어내는게 괜찮으냐는 의문과 함께 사회경제적 낭비도 간과할 수는 없는 문제다.
정부가 당초 방침을 후퇴함으로써 세입자들은 한숨 돌리게 됐지만,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치른 곤욕은 말로 다할수 없다.
좋은 정책이란 그것이 시행될 때 몰고올 여파를 충분히 감안한 것이어야한다. 또 그런 정책은 발상 자체는 좋아보여도 책상머리에 앉은채로서는 결코 나올수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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