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습관적 추경 편성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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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이틀 연속으로 추경 편성 가능성을 거론했다.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청년실업이 심각하긴 하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로 역대 최악이었다. 게다가 한국GM 사태로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어 고용시장이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필요하다면 재정이 경제의 마지막 안전판 역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재정 당국 스스로 추경을 거론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지난 18년간 모두 15차례의 추경이 편성될 정도로 추경은 일상화됐다. 특히 428조9000억원의 올해 본예산이 집행되기 시작한 1분기에 정부가 먼저 추경을 거론한 건 이례적이다. 1분기 조기 추경이 있었던 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99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뿐이었다. 전년 대비 7.1% 늘어나 ‘수퍼예산’으로 불렸던 올해 예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추경을 거론하는 건 올해 예산 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고백밖에 안 된다.

청년일자리 추경이 정말 필요하다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지난해 7월 편성한 11조원의 일자리 추경 효과부터 제대로 따져 보고 나서 검토해도 늦지 않다. 그래야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 추경’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재정법의 추경 요건을 더 강화해 매년 습관적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적폐부터 청산해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 주요 기관이 올해 3%의 무난한 성장을 예상하는 상황에서 모든 현안을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잘못된 관행은 ‘재정 중독(fiscal alcoholism)’일 뿐이다. 최저임금의 과격한 인상 등 무리한 규제만 합리적으로 조정해도 추경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추경 얘기를 꺼내기 전에 정부가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먼저 고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