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가-심상복<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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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정부는 재형저축 가입자 가운데 규정보다 저축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을 가려내 해약시키라는 지시를 해당 금융기관에 내려 가입자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축 많이 하는 것을 막는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재무부와 감사원은 재형저축을 한 달에 12만원 이상하고 있거나 12만원 한도 내라도 월 급여의 30%를 넘는 경우 해당 가입자를 골라내 해약 또는 다른 저축으로의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국민저축을 늘리기 위해 별의별 정책을 만들어내던 정부가 이제 와서 느닷없이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은 가입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는 특별 장려금의 재원이 되고 있는 재형기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국내 저축률이 35%를 넘어 국내 투자율을 훨씬 상회하자 이제 저축 같은 것은 별 볼일 없다는 자만심(?)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도 저축률이 낮아 만성적인 자금난이 계속된다면 그보다 더 유리한 조건의 저축상품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재형저축도 정부가 저축을 늘리고 저소득층의 재산형성을 돕기 위해 76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이제 12살이 되었다. 그동안 정부와 은행은 재형저축 가입을 늘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특히 은행들은 예금유치 경쟁이 붙어 소위 무자격자의 가입을 권유했으며 월12만원이상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부추긴게 사실이었다.
그러던 정부와 은행이 이제와 저축률이 세계에서 대만 다음갈 정도로 높아지자 위규 가입자 색출 운운하는 것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속담을 생각하게 하는 처사다.
한은에 따르면 이에 해당하는 저축자는 전체 가입자 약4백만명의 5%에 달하는 20여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해약시킬 경우 재형기금은 얼마간 절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규정을 어긴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그 잘못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따져보면 그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 붙여서 될 일인가 곰곰 생각해 볼 문제다. 더우기 금융기관은 공신력을 생명으로 삼는 곳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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