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나눔까지 정부가 주도해서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와 부인 메린다가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어린이 병원을 방문한 사진이 열흘 전쯤 파이낸셜 타임스 주말판에 크게 소개된 적이 있다. 방금 새벽 미국에서 도착한 그들은 평범한 옷차림으로 입원실에 누워 있는 아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무엇이 이들 마음을 움직여 저기까지 가게 했을까. 비록 사진이었지만 그들의 눈빛과 손길에서 나는 신의 손길과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신은 이들에게 재산을 허락했고 그들은 그 재산을 합당하게 쓰려고 애쓰는 장면이었다. 빌 메린다 게이츠 재단은 이 부부의 개인재산 260억 달러보다 더 많은 300억 달러 규모다. 이 재단은 세계보건기구(WHO)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들에 대해 세금회피용이라든가, 마이크로 소프트의 독점에 대한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부부는 그런 비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세상에는 언제나 그런 식의 비판이 많았으니까…. 이 부부의 관심은 가난한 나라였다. 이질.소아마비.폐결핵.에이즈 등으로 죽어 가는 수많은 생명이었다.

삼성이 8000억원을 사회에 내놓았다. 그 돈의 관리를 정부와 시민단체에 맡긴다는 의사에 따라 정부가 지금 방안을 짜고 있는 듯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정부가 이 돈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삼성이 정부의 개입을 요청했다 해도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혹시 벌금이나 몰수금이었다면 몰라도 이 돈은 말 그대로 개인의 기부금이다. 삼성이 왜 정부에 관리를 요청했는지에 대해 여러 해석은 있을 수 있다. 일종의 사과와 반성의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 돈의 용처를 결정하거나 사용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사회적 자원을 권력이라는 매개수단을 통해 강제로 배분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기부금은 권력으로 강제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자의 관심과 사랑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배분의 주체가 될 경우 돈의 쓰임새가 자연히 예산의 보조 형태가 될 소지가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빈곤 세습과 교육기회의 양극화를 막는 방향"으로 사용할 곳을 찾으라고 말한 바 있다. 8000억원이라지만 원금을 까먹지 않는 한 매년 쓸 수 있는 돈은 기백억원에 불과하다. 양극화 해소라는 거창한 사업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돈의 규모에 맞는 용처가 나와야 한다.

그 사용처에 관심이 제일 큰 사람은 바로 돈을 낸 당사자일 것이다. 빌 게이츠는 질병에 시달리는 후진국 어린이들이 눈에 밟혀 그 분야에 집중했다고 한다. 카네기 재단은 교육.문화사업에, 록펠러 재단은 공공위생.의학교육.과학기술 증진에 돈을 집중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영재교육을 위해 이미 4500억원의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기부자의 철학과 비전에 따라 돈의 용처가 결정돼야 한다.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가슴에서 나오는 따뜻한 손길로만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체가 될 경우 낭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세금을 걷어 쓰는 정부는 사실 돈 귀한 줄 모른다. 이 돈도 잘못하다가는'눈먼 공돈'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이 돈을 가장 아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돈을 낸 사람이다. 또 정부가 개입할 경우 배분과정에서 공정성을 지킬 수 있느냐도 문제다. 명분이야 그럴 듯하겠지만 이 돈을 특정한 정치목적을 염두에 두고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이 이 돈의 처분을 정부에 맡긴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됐다. 삼성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발표문대로 떳떳이 그 대가를 치르고, 그 후 비전에 맞는 나눔이 있어야 했다. 대통령 역시 제의를 냉큼 받아 "정부가 나서서 과정과 절차를 관리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므로 기부자가 주체가 되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어야 옳다. 지금이라도 이 돈이 꼭 알맞은 자리에,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바른 나눔의 문화를 위해서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