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여건이 바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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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일부터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8차 한미무역 실무회의는 그 어느 때 회의보다 주목을 많이 받을 것이다.
우리측 입장에서 보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총선 후 정치상황이 많이 바뀐 뒤 처음 개최되는 회의다. 미국 측에서 보더라도 오는 11월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있을 뿐 아니라 의회에서 종합무역 법안이 통과되는 등 보호 무역주의가 고조된 분위기에서 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우리의 상품, 서비스 시장 확대개방, 관세인하, 지적소유권 보호, 비관세장벽 완화 등 그 동안 타결을 못 본 현안들이 거의 총 망라되어 의제로 올라있다.
한미 양측 대표단의 규모나 의제가 여타 회의 때와 엇비슷하고 각료 급 회의는 아니지만 특별히 주목이 가는 것은 이유가 있다.
미국 측은 이번 회담에서 집중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대한 우리측의 대응이 주시할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한미경제 관계 현안들은 하나 하나가 정치 사회적으로나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민감한 사항들만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우리 정부는 타결을 대통령 선거와 총선 이후로 미루어왔다. 정치 일정이 일단락 된 마당에 미국 측의 집중공세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면 우리측 사정은 어떤가. 총선 결과 야당이 국회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정치판도의 변화는 비록 대미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통상외교 전반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독자적 판단이나 기껏해야 정부·여당의 정책협의 과정을 거치는 정도로 통상외교를 해왔으나 이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통상 외교에도 깊숙이 사전 조정하게될 것이고 자주 공개토론을 벌이게 될게 틀림없다.
정부 대 정부의 통상외교 밀월시대는 끝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대한 통상압력의 강도는 미국 스스로 판단할 일이지만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의회도 이런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강압은 재고되어야 한다. 미 의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국회에서 개방정책에 보수적이며 야당은 그런 성향을 공약으로 내세워 총선에서 실리를 취했다. 야당의 보수적 통상외교 노선은 대 국민 약속이어서 정부 통상정책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점 또한 미국 측이 유의하면 우리의 통상외교 정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야당이 우세한 의회의 압력을 내세워 우리에게 통상 압력을 이해시키려 했으나 이제는 우리측이 엇비슷한 이해를 구하는 입장이 되었다.
우리 정부도 새로운 정치여건을 잘 활용하면 통상외교 전략 강화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의 자의적 판단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통상 외교가 국회의 이해와 협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면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국회의 개입이 통상외교에 부담이 된다기보다 통상외교를 한 차원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국회는 한미 관계를 포함, 통상외교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흔들기보다 국익 우선에서 『나무 아닌 숲』을 보는 시야를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한미무역 실무회담에서 쌍방은 현안 하나 하나를 푸는 노력도 해야하지만 통상외교에 지대한 파급이 예상되는 우리측 주변여건 변화에 대해 미국 측의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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