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 특별시장의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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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염보현 전 서울시장의 구속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공직자가 봉사의 대상인 국민보다는 오직 한사람을 위해 사병처럼 굴 때 그 말로가 어떻게 되는 가도 그 중의 하나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과 세금을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남용했을 때 그 결과가 허망하게 끝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민에 뿌리박지 못한 위세는 허세일 뿐이고 이에 기초하지 않는 권세는 한낱 뜬구름이라는 것도 재확인하게 된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당당하고 오만했던 염씨가 초췌하고 풀 죽은 모습으로 수감되는 장면을 보고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는 복마전이라는 서울시의 시장을 4년이나 재임하면서 결국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밝혀진 수뢰 액이 1억2천 만원이라고 하나 과연 그것밖에 안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직권을 오·남용한 죄과는 우리 사회에 추악한 고위 공직자, 일그러진 지도자 상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끼친 해독에 비추어 보면 비교가 안 된다.
성실과 정직, 공정과 질서 등 이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기둥이 되는 긍정적 가치들을 송두리째 파괴시켰다. 긍정적이고 보편적 가치의 손상은 물론 아부 근성과 과잉충성, 부정과 비리, 영달치부와 기회주의 등 부정적 가치들을 심어 놓기까지 했다. 이런 죄과는 사법적 처단만으로는 씻어지기 어려울 만큼 크고 넓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국민에게 배신감을 준 것에 대한 도덕적 문책까지도 받아야 한다.
물론 그 같은 책임과 과오가 그만에 국한된 게 아님은 잘 알고 있다. 본질을 따지자면 그 뿌리가 어디에서 싹텄고 원죄가 어디에 있는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또한 그 같은 유형의 공직자가 염씨 하나뿐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더하면 했지 덜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정부는 우리가 사는 소중한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공직사회를 오염시키고 분탕질하는 악덕 자들을 뽑고 또 뽑아야 할 것이다. 5공화국이 남긴 불행한 유산은 그런 점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또 검찰은 염씨의 구속으로 할 일을 다했다기보다는 최소한 국민이 납득할 수준까지 수사를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끝을 보자면 한정이 없지만 우선 지난번 대통령 선거 도중에 서울 시민의 반대와 원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 주택가 곳곳의 녹지대와 공원을 닥치는 대로 해제, 고급 아파트와 주택을 짓도록 한 이면도 밝혀 내야 한다. 퇴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고 감옥에 갇히는 일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이 시장을 뽑고 시의회가 견제, 감시하는 지방 자치제의 완전 실시가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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