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의료팀 1시간 지나 현장 투입 … 사망·응급환자 분류도 제대로 안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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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초기 보건복지부의 재난응급의료비상매뉴얼(이하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혼란을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 매뉴얼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재난 상황에서 보건소 등 의료 당국이 응급 환자의 이송이 완료될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재난의료 매뉴얼 안 지켜 피해 키워 #무조건 30분 심폐소생술, 헛수고도

29일 밀양시 보건소 등에 따르면 세종병원 화재는 지난 26일 오전 7시25분쯤 발생해 7분 뒤인 32분 첫 신고가 이뤄졌다. 매뉴얼대로라면 사고 소식은 소방서에서 복지부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전해진다. 이후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추가 사상자까지 우려되는 경계 단계가 되면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시·군 보건소 신속대응팀과 권역별 응급의료센터의 재난현장의료팀에 출동 지시를 내려야 한다. 현장에서 사상자들을 분류해 응급처치를 한 뒤 병원으로 보내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세종병원 화재에선 신속대응팀이 제 역할을 못했다. 우선 현장 도착이 늦었다. 신속대응팀 등은 사고 발생 1시간 정도가 흐른 오전 8시30~35분부터 현장에서 임무에 들어갔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온 수십 명의 사상자는 119구조대가 환자를 임의로 분류해 병원으로 후송했다. 신속대응팀은 출동 지시를 받은 즉시, 재난현장의료팀은 10분 이내에 출동하게 돼 있지만 도착시각 규정이 따로 없어 생긴 일이다.

환자 분류도 제대로 안 됐다. 매뉴얼엔 긴급한 환자는 빨간색, 응급 환자는 노란색, 사망자는 검은색으로 분류표나 띠 스티커 등을 부착하게 돼 있다. 병원은 사상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를 보고 응급조치를 한다. 하지만 세종병원 화재 때는 신속대응팀이 도착한 이후에도 환자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4일째인 29일까지 어떤 사상자가 언제 구조돼 누구로부터 환자 분류를 받아 어떻게 병원까지 후송됐는지 파악이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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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일부 유족은 “(환자 분류가 제대로 안 돼) 사망자로 분류된 생존자가 있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천재경 밀양보건소장은 “워낙 단시간에 많은 사상자가 쏟아져 현장 의료진 판단으로 병원 긴급 후송을 했다”며 “매뉴얼은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이어서 상황별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혼란은 고스란히 병원으로 이어졌다. A병원의 경우 이송된 32명 중 1명만 분류 스티커가 있었고 B병원은 환자 6명 모두 분류표가 없었다. 일부 병원에는 종이에 적은 쪽지나 119구급대원의 말로 환자 상태가 전달됐다.

이 과정에서 병원에 도착한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는 혼선이 빚어졌다. A병원 관계자는 “(환자 분류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나중에 보건소 지시로) 맥박이나 심장이 뛰지 않는 환자에게도 무조건 30분간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했다. B병원 관계자는 “119상황실에 경증 환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중증 환자

1명도 보냈다”며 “심폐소생술을 15분간 실시한 뒤 창원삼성병원으로 보냈지만 사망했다”고 말했다. 심상도 서울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지원팀 출동 요청을 복지부가 하는 탓에 재난 발생 40~50분 뒤 현장에 도착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119상황실에 곧바로 신속대응팀 등을 출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장·병원장 등 3명 출국금지=세종병원 화재로 또 1명이 목숨을 잃어 전체 사망자가 39명으로 늘었다. 밀양소방서 소속 소방관 2명도 각각 친할머니와 간호사였던 처형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사장·병원장·총무과장 총 3명을 출국금지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밀양=위성욱·최은경·이은지·조한대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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