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걱정스러운 대법원장의 ‘인적 쇄신’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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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 구성원의 충격과 분노” “국민들의 배신감”을 언급하며 추가조사위원회가 이틀 전에 발표한 내용을 사실상 실체적 진실로 인정했다.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판사 성향 분류 작업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단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도 이 위원회가 찾아낸 자료를 ‘성향 분류 리스트’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법행정위원으로 추천할 후보를 선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후속 조치로 법원행정처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 조치를 제시했다. 법원행정처의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면서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것은 법조계에서 대체로 동의하는 시각이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이미 개혁 방침을 밝혔던 부분이기도 하다. 문제는 ‘인적 쇄신’ 부분이다. 진보 성향 판사들이 주도해 만든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들 중심으로 추가조사위원회가 꾸려지자 법원 안팎에서는 법원행정처가 꼬투리 잡힐 만한 내용이 나오면 김 대법원장이 이를 법원 인사에 활용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법원의 ‘신(新)주류’를 형성한 이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법원 내 요직으로 대거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이 모임 회원이었고, 그가 임명한 법원 인사 책임자(인사총괄심의관)도 이 모임에서 활동해 온 판사다.

다음달에 발표될 법관 정기 인사를 앞두고 뛰어난 법리적 판단과 재판 진행 능력을 보여 온 판사 수십 명이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사법부에서까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요직 등용과 배척이 이뤄질 것이 우려되는 상황과 무관치 않은 일이어서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