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물 먹는 하마 변기’ 바꾸고 물값 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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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

서울대는 ‘물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듣는다. 관악캠퍼스와 연건캠퍼스 두 곳에서 사용하는 물 사용량이 1년에 220만t(2016년 기준)으로 서울시에서 가장 물을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라서다. 용산구 전체 주민이 한 달 이용하는 양과 맞먹는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

이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 ‘화장실’에서부터 이뤄지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효과가 엄청나요.” 지난 1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한무영(62·사진)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2년 전 학교 당국에 “화장실의 S자형 변기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한 교수는 “S자형은 모양상 필연적으로 물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외국에선 일자형과 공기 흡입식 등 다양한 변기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물을 아끼려는 관념이 별로 없기 때문에 S자형만 계속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교수가 측정했더니 배수구가 S자형인 변기는 한 번 물을 내릴 때 약 12L가 사용됐다. 한 교수는 이를 한 번에 약 4.5L 드는 일자형으로 교체하자고 했다.

서울대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상반기에 관악캠퍼스 변기 500대를 일자형으로 바꿨다. 전년 대비 물 사용량은 4.8% 감소했고 약 8670만원이 절감됐다. 한 교수는 “수천 대에 달하는 서울대의 변기 전부를 교체하면 엄청난 양의 물을 줄일 수 있다”며 “교체 공사 비용까지 고려해도 1년이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을 아낄 수 있는 어려운 방법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이렇게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에도 서울대는 약 200대의 변기를 일자형으로 바꾼다.

S자형 변기는 1775년 영국에서 수세식 변기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사용됐다. 변기와 긴 S자형 관에 물이 꽉 차면 일시에 물이 내려가는 ‘사이펀 원리(Siphonage)’를 이용한 것이다. 긴 관의 물을 거치면서 악취를 줄여주는 효과도 있었다. BBC월드서비스는 지난해 ‘현대 경제를 가능하게 한 50가지 발명품’의 하나로 이 변기를 뽑기도 했다.

하지만 한 교수와 서울대 행정팀은 일자형 변기로 교체한 이후 악취 문제나 수압 때문에 변기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례는 없었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미국 환경보호청 홈페이지에 가보면 4L 이하의 물을 사용하는 변기 모델 소개가 3000건이 넘는다. 4.8L 이상 모델은 아예 소개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전체 물 사용량의 25%가 변기에서 사용된다”며 “‘물부족 국가’라고 말은 하면서 아무도 물을 아끼려고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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