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신축성 있는 통화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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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물가억제를 위해 총수요 관리를 강화하면서 시중엔 자금 경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국제수지 흑자로 해외부문에서 계속 통화가 풀려 자금 사정은 좋은데다, 다른 쪽에서 인플레 수습책의 하나로 통화환수를 하고 여신규제를 강화하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은행돈을 쓰기 힘들게 된 기업들은 제2 금융권에 의존하려 해도 그쪽 역시 과도한 통안증권 인수 등으로 여력이 없어 새로운 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대기업들은 비상수단으로 외국은행 국내지점과의 옵션거래를 통해 운영 자금을 조달했으나 앞으로는 이것 마저 억제되어 자금 관리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가극복을 위해 정책당국이 동원 가능한 여러 가지 수단을 활용해야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무리한 금융 긴축이 경제의 원활한 순환을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계가 최근 내놓은 통화관리에 관한 대정부 건의는 주목하게 된다.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통화억제정책이 민간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수출에 장해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지금의 비현실적인 통화관리 목표에 집착하지 말고 보다 신축성 있게 통화를 운용해 주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올해 억제목표로 하고 있는 총통화(M2)증가율은 18%인데, 이것을 현실에 맞게 상향 수정할 것을 요망한 것이다.
경제계의 주장대로 통화긴축으로 투자가 어렵다거나 수출이 위축되고 있다면 총통화억제 목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통화관리의 주목적은 물가불안을 다스리면서 적정통화를 공급하여 실물경제의 성장을 지원하는데 있다. 물가 못지 않게 경제성장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총통화는 시중의 유동성을 반영하는 지표로서의 그 합리성에 문제가 있고 우리의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마당에 l8% 총통화 증가율에만 집착할게 아니라 다소 상향조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장기저축성예금이 증가해도 높아지는 총통화 지표에 묶여 억제선 18%의 통화관리를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고성장 지속과 투자수요의 증대를 감안하면 통화량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각종 정책금융의 중단과 강력한 통화환수·고속 원화절상으로 기업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통화 관리에서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비생산적 투기성 시중 부동자금이다. 기술혁신이나 설비투자 등 생산에 직결되는 자금은 보다 신축성을 가져야할 것이다.
경제의 중장기적 안정대책으로 산업의 공급능력 제고와 구조조정이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투자확대는 불가피하다.
특히 국제수지 흑자 기조에 따른 개방정책에 맞추어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투자는 절실하다.
통화관리는 경제안정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 점에선 일만의 신축성 있는 통화관리가 교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안정을 위한 여타정책을 강화하면서 물가안정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통화관리에 신축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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