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영국에 진 빚 800만 달러, 한국이 대신 갚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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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폐. 조문규 기자

북한 화폐. 조문규 기자

영국 정부가 793만 달러(85억원)에 달하는 북한의 빚을 덜어줄 계획을 세웠다가 남북한이 통일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같은 계획을 취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0년 넘게 못 받은 빚 탕감해주려다 돌연 철회" #미 VOA, 2013년 당시 관계자 e메일 통해 보도 #“통독 당시 서독이 동독 빚 대신 갚아준 전례”

9일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2013년 6월께 영국수출금융청(UKEF)·재무국 관계자들이 주고 받은 e메일 등을 입수해 이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그해 5월 UKEF는 북한의 빚을 탕감하기로 결정했다. 북한 정부가 빚을 진 건 인정했지만 적극적으로 돈을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UKEF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영국에 진 부채는 586만 파운드(1975년 기준)로, 달러로 환산하면 793만 달러(85억 원)에 달한다. 북한은 72년 영국 철강기업인 GKN으로부터 석유화학단지 개발 투자를 받으면서 영국에 채무를 지게 됐다. 당시 GKN은 786만 파운드를 투자했지만 북한은 이 돈의 일부만 돌려준 뒤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고 VOA는 전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한달 뒤인 6월에 폴 래드포드 UKE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니겔 스미스 재무국장에게 “북한이 영국에 진 부채를 당장 변제할 가능성은 적지만 결국엔 돌려주게 될 것”이라는 e메일을 보냈다. “한국과 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도 덧붙였다. 북한 빚은 탕감해주지 않아도 한국으로부터 상환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포기하기 말자는 의미다. 이에 스미스 재무국장도 “북한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으려는 시도를 중단해선 안된다”고 답했다고 VOA는 전했다.

24일 오후 판문점에서 이틀째 남북 2+2 고위급 협상이 열렸다. 개성공단에서 출발한 화물차 행렬이 통일대교를 통과하고 있다. 오종택

24일 오후 판문점에서 이틀째 남북 2+2 고위급 협상이 열렸다. 개성공단에서 출발한 화물차 행렬이 통일대교를 통과하고 있다. 오종택

이런 사실이 공개되자 전문가들은 남북 통일이 이뤄지면 한국이 이 빚을 대신 갚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미드 장게네 미국 와이드너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했을 때도 서독이 동독의 자산과 부채를 이어 받은 전례가 있다”며 “한국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 북한의 부채는 10억 달러(1조원)에 못 미친다. 한국 정부에 크게 부담을 줄 규모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영국 이외 스웨덴·오스트리아·스위스 등도 북한으로부터 30년 이상 빚을 상환받지 못했다. 특히 스위스가 돌려받아야 할 돈이 2억875만 달러(2230억원)로 가장 많다고 VOA는 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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