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피임은 반역 … 적어도 아이 셋은 낳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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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에르도안. [뉴시스]

에르도안. [뉴시스]

터키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부촌 니샨타시에 사는 디덤 센(Didem Sen)은 6년 전 출산을 마흔 살까지 미루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려 하니 쉽지 않았다. 불임 치료까지 했지만, 임신이 안 됐고 그녀는 아이를 포기했다.

인구 8027만으로 세계 20위 터키 #출산율 2.1, 역대 최저수준 하락 #장려금·휴가연장 다 효과 못 보자 #“무슬림 의무” 들이대며 다그쳐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이를 ‘감사한(feeling blessed) 일’이라고 여긴다. 센은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책임이 따르고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내 아이가 (태어나) 이 체제 내에서 얼마나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터키가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4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최근 터키에서는 출산을 꺼리는 여성들이 늘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철권통치를 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끊임없이 “적어도 아이를 셋은 낳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여섯 번째 손주를 본 직후에도 “국가는 더 많은 인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출산 독려 발언은 노골적이고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지난 2016년 생방송 연설에서 그는 “무슬림이라면 산아제한이나 가족계획을 받아들여선 안된다”, “터키 인구를 늘리는 건 어머니 책임”이라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또 2014년 한 결혼식 연설에선 피임을 ‘반역’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제·사회적 정책을 강화하기보다는 출산을 무슬림의 의무와 결부시키면서 마치 여성을 출산의 수단인 것처럼 여기는 듯한 에르도안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디언은 “많은 사람이 ‘구 시대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에르도안의 말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의 출산율과 인구 증가 정체라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현재 터키 인구는 8027만명(2016년 기준)으로 세계 20위다. 유럽 국가 가운데 독일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2016년에는 출산율이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인구 대체 수준)인 2.1명 수준으로 추락했다. 1980년의 절반으로, 터키 역사상 가장 낮은 출산율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터키 정부는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을 주고 공무원들의 출산휴가 기간을 늘리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가디언은 출산율 하락세에 대해 “여성의 교육 수준이 오르고 사회 진출 기회가 늘어나는 등 현대화의 징후”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비용, 직업의 양극화, 국가 내 갈등 등 다양한 이유로 출산을 늦추거나 아예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염, 높은 흡연율, 성병,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대도시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터키 북부 지역 에디르네 시의 출산율은 소득 수준이 낮은 남동부의 산르우르파 시보다 3배 가량 높다고 한다.

터키로 유입되는 시리아 난민이 장기적으로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 2011~2016년 터키에서 시리아 여성이 출산한 아이는 17만7000명으로 2016년 한 해에만 8만명에 달하고, 지난해엔 9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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