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호품과 건강-허정<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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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절제의 지혜>
술과 담배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기호품임에 틀림없다. 특히 술의 역사는 깊다. 맹자의 「이루장」을 보면 옛날 중국에선 사람들 사이에 술을 너무 즐겨 우임금은 맛있는 술을 멀리하고 후세에 반드시 이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술을 만든 사람 또한 귀양을 보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것이 곧「우악지주」란 유명한 고사다.
술을 마시는 역사가 길다면 담배는 그렇게 길지 않다.『오주연문장전산교』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광해군 때부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건강에 그리 좋은 기호품이라 할 수 없다. 술을 많이 마시면 뇌출혈이나 협심증·고혈압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고 간경변증도 일으키기 쉽다. 담배 또한 니코틴·타르라는 독극물이 들어있고 발암성 물질 때문에 기관지암이나 폐암을 일으키기 쉽다.
특히 니코틴은 혈관을 수축하고 고혈압이나 관상동맥경화증, 또는 협심증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조자양도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 잘 나타나며 여자가 임신 중에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유산이 되거나 태어나는 어린이가 기형이 되는 등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치기 쉽다.
이론적으로 볼 때 술과 담배는 바람직한 기호품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피우던 담배와 술을 끊고 난 후 갑자기 체중이 불고 생활이 너무 무료해져 잠이 안 오고 노이로제상태에 빠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역시 술과 담배도 조화와 균형의 문제라고 여겨진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맥주라면 작은 명으로 한병, 소주라면 반명 쯤 소화되기 쉬운 고기안주와 함께 반주를 즐기는 것이 하루의 긴장을 풀고 내일의 능동적 활동에 대비하는 보다 나은 생활태도라 하겠으며 골초인 애연가가 담배를 끊으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끊고 금연 후 생기는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적응기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태도라 하겠다.
술을 많이 마시면 건강을 망치며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지만 이미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셔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주와 금연에는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달려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렵다고 멋대로 마시고 담배를 피우라는 얘기는 아니다.
금연 후 늘어나는 식욕을 적정선에서 억제하고 술을 줄인 후 생겨나기 쉬운 정신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한 후 자신의 마음과의 합의를 거쳐 이를 철저히 실천에 옮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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