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드’ 압박과 취재진 구타로 얼룩진 문 대통령 방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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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문재인 대통령의 첫 중국 국빈(國賓) 방문이 과연 이 시기에 굳이 이루어져야 했었나 하는 짙은 아쉬움이 든다. 어제 베이징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시 주석은 중국의 입장을 재천명하며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시진핑, 사드 문제 적절한 처리 한국에 요구 #중국 경호원들, 문 대통령 수행 취재진 폭행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진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보다 큰 역할 발휘와 관련해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반드시 지켜 갈 것”이며 “전쟁과 혼란은 절대 동의할 수 없고 한반도 문제는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성과라면 한·중이 ‘FTA 2단계 협상 시작’을 선언하고 미세먼지 대응 협력 등 7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한 정도다. 또 양국이 서로 겨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협력하자는 말을 교환했다.

방중 전부터 논란이 됐던 중국의 홀대도 아쉬운 부분이다. 문 대통령을 맞으러 공항에 나온 이가 차관보급 인사라 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날 정상회담 이후에도 공동성명이 아닌 언론 발표문을 각자 내놓는 정도였다. 특히 리커창 총리와 오찬이 잡히지 않은 건 부끄럽기까지 하다. 먹는 걸 하늘로 여기는 중국에서 손님 접대의 1번은 식사 초대다. 중국에서 문 대통령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외교 혼밥’ 개탄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날 오전 중국 경호원들이 한국 취재진을 폭행한 불상사는 문 대통령 방중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경호원들은 한국 기자들의 문 대통령 근접 취재를 막아서며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두 차례에 걸쳐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특히 쓰러진 기자를 구둣발로 짓밟아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할 정도”(청와대 의무대장)의 부상을 입히고 이를 말리는 청와대 관계자들에게까지 손을 대는 무례를 범했다. 손님 불러 구타로 대접하는 게 과연 중국식 예법인가 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한 사건이다.

우리는 이번 폭행이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중국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게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마침 이날 중국 환구시보는 ‘일부 한국 매체가 문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예우를 문제 삼으며 양국 관계 회복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매체로 기능하는 중국식 언론관을 한국의 자유 언론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논리로 읽혀져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는 중국 당국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 폭력을 휘두른 자들을 엄벌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성의 있는 치료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 처리에 나서는 우리 정부의 안이한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갖고 보도해 달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주문에서 문 대통령 방중 성과에 누가 되지 않게 하려는 얄팍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우리 국정 목표가 “국민이 주인인 정부”라고 설명했는데 바로 그 현장에서 매 맞는 자국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면 누가 그 정부를 믿고 따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