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실패 1억 빚더미 20대 주부 강도 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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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26일 오후 5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율사 새마을금고에서 장난감 소총으로 은행강도 행각을 벌였던 사람은 남편과 딸 둘이 있는 24세 주부 金모(충북 청주시)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직후 새마을금고 입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잡힌 얼굴이 언론에 공개돼 숨을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는 그는 "지난 4일 동안 초조함에 죽음까지 생각했는데 붙잡히니 차라리 홀가분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도피해 있던 친정집에서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에 잡혀가는 불효를 저지른 데다 생후 15개월밖에 되지 않은 딸과 헤어져야 한다는 신세 때문인지 검거 후 몇시간 만에 탈진해 조사마저 중단됐다.

대학을 중퇴한 그는 3년 전만 해도 남편과 함께 주택마련과 자녀양육 등 아름다운 꿈을 가꿔오던 평범한 주부였다. 꿈이 화근으로 변한 것은 과욕 때문이었다.

남편(33)이 사업에 실패한 뒤 주식투자를 하면 큰 돈을 빨리 만질 수 있다는 대학친구의 말에 덜컥 빚을 냈던 것이다. 남편의 신용카드로 6천만원, 자신의 카드로 4천만원을 대출받아 친구에게 주식투자를 대신 해달라고 맡겼으나 1년 만에 원금을 거의 날렸다.

결국 범행을 결심했다. 계획도 치밀하게 짰다.

범행대상은 전에 살았던 동네의 새마을금고로 정했다. 범행도구는 여섯살짜리 딸의 장난감 소총과 모자.유모차.선글라스 등이었다. 새마을금고 2층 소아과의원에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금고 내부 상황을 수시로 점검했다. 문을 여닫는 시간, 직원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 등….

범행 당일 금고가 문을 닫을 시간에 딸에게 금고 내부를 살펴보도록 시켜 남자직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범행에 들어갔다.

급한 마음에 금고 입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는 바람에 얼굴이 완전히 노출됐다.

그러나 범행은 일단 수월하게 끝났다. 여직원이 임신 중이어서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범행 직후 뒷골목에 잠시 숨어 있다가 작은 딸 유모차에 1천5백여만원이 든 현금상자를 싣고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1천만원으로 대출금을 갚고 밀린 월세와 보증금 1백80만원도 집주인에게 건넸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하던 청주 동부경찰서는 사진을 토대로 목격자를 탐문, 金씨를 용의자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30일엔 인터넷 방송을 통해 金씨의 얼굴을 보게 된 제보자도 나타났다. 경찰은 31일 金씨에 대해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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