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신문을 안 보는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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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통령치고 언론을 좋게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도 대통령이 된 후 마음이 바뀌었다.

파당(派黨)적인 신문들 등쌀에 시달린 나머지 그는 신문보도를 진실과 진실일 법한 것, 진실일 수도 있는 것, 거짓의 네가지로 분류하고 거짓이 주종을 이룬다고 자주 역정을 냈다.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꺼렸다. 각본 없는 기자들 질문에 혹 말 실수나 엉뚱한 답변이 불러올 혼란과 일파만파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적 '입'은 대변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이따금씩 특유의 언변으로 의회 및 국민에게 직접 호소함으로써 '위대한 커뮤니케이터(소통가)'로서의 감동을 심었다.

정부와 언론은 서로 입장을 달리 하는 대립적(adversarial) 관계다. 적대관계도 유착관계도 아니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견제하며 공생하는 관계다. 이 과정에서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있고, 이를 슬기롭게 조화시키며 건강한 긴장관계로 이끄는 것이 지도자의 역량이고 국정 운영의 노하우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 6개월 만에 언론과의 '밀월'은 고사하고 주류 신문과 '전쟁 국면'으로 돌입한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안보와 대외 신뢰 위기가 동시에 겹치고 집단이기주의가 봇물을 이루면서 정부도 언론도 중심잡기가 어려웠다.

이 와중에 정부가 일관성있고 체계적인 대응을 못했고 신문들 또한 그날그날 급박한 쟁점에 매달리느라 '밀월'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대통령 입장에서 서운한 점이 적지 않고 일부 '말꼬리 잡기'와 인신공격성 질타가 사태를 악화시켜온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언제 대통령 대접해준 적 있느냐' '신문만 안 보면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 식으로 주류 신문과 감정적인 대립각을 세운다면 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후보 시절 일부 신문에 맺힌 감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당선되면서 이를 떨쳐버리는 것이 대통령의 그릇이고 도리다. 언론과 고집으로 맞붙어 '끝장'을 내겠다면 십중팔구 파국이나 우리 모두의 패배를 결과할 뿐이다.

盧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청와대의 한 간담회에서 자신은 '언론과 적당히 지내지 않는 대통령일 뿐'이며 언론을 '탄압할 힘도, 의지도 없다'고 밝혔다.

듣던 중 반가운 얘기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계를 고치고 제대로 된 관계를 정립해 나가려면 무엇보다 언론부터 자신을 되돌아보고 금도를 지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과 정부 쪽에서도 최소한 다음의 네가지는 유념해야 한다.

첫째, 언론 매체에 대한 편 가르기를 버려야 한다. 특정 매체에 대한 적대시나 편애는 참여정부의 정신에도 안 맞고 국민 통합에 독(毒)이다.

둘째, 언론과의 대화 활성화다. 술과 식사 대접이 아니고 정책의 의도와 장.단점, 불가피성, 배경 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배경 브리핑'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나는 사심없이 잘 하고 있는데 왜 비판들이냐'고 역정내기에 앞서 언론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셋째, 왜곡보도와 오보(誤報)는 당당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고 언론 개혁은 여론이나 시민단체에 의한 강요보다는 법과 제도를 통한 자율적인 개혁을 유도해야 한다.

넷째, 대통령은 모호한 어법과 준비되지 않은 즉흥 발언을 삼가야 한다. 대변인이 아무리 유능해도 이는 불감당이다. 특히 쉽고 친근하고 진솔한 어법은 대통령직(Presidency)의 품격이 뒷받침될 때 빛과 감동을 발하는 법이다. 링컨이 그 스승이다.

변상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