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거세지는 '건교부 원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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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대출로 집을 장만하려다 포기한 이들의 애절한 사연은 물론 "서민은 죽이고 잘사는 사람은 더욱 잘살게 해 주는 우리 정부, 역시 대단합니다" 등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많았다. 심지어 건교부 장관의 사퇴를 종용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생애 대출에 이어 근로자.서민 자금의 대출자까지 날벼락을 맞았다는 기사(본지 2월 27일자 1면)가 게재되자 서민들의 원성은 더 거세졌다.

정부 정책이 모든 이를 만족시키긴 정말 힘들다. 특히 돈과 관련된 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부활한 생애 대출이 3개월여간 운영돼 온 과정을 지켜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대로 된 수요 조사 없이 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돈이 없어 대출이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래도 재원이 모자라자 제도를 세 번이나 바꾸었다.

추병직 건교부 장관은 "과거에 생애 대출을 시행했을 때 별로 인기가 없어 이번에도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에 금융권의 전문가 등과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쳤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건교부는 "실수요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대출 기준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자기 발등을 찍는 말에 불과하다. 처음 제도를 도입할 땐 가수요 등 시장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을 실토한 셈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번 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욱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건교부가 올해 해야 할 일은 무척 많다. 재건축에 대한 규제, 청약제도의 개편 등은 당장 급한 일이다. 3월부터는 판교 신도시 분양을 시작하고, 행정중심 복합도시 등 각종 기획도시 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 없이는 이 모든 일이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일을 뼈 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앞으론 건교부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정부를 성토하는 장이 아닌 건전한 대화와 정책 제안의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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