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바퀴벌레와 동거 그리고 이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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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슴속이 시리도록 외로워 본 적이 있으신지. 그래서 문득 죽음을, 인간을,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고민한 적이 있는 분에게 장경섭(36)의 만화 ''그'와의 짧은 동거'(길찾기)는 낯익다.

여기서 '그'란 바퀴벌레다. 지독히 외롭던 어느 날 밤, 침대 위에서 존재를 인정받은 뒤 사람만큼 커져 친구이자 가정부가 됐다. 작가가 말하는 세상에서 바퀴벌레는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다. 비주류와 함께 산다는 세상의 손가락질에 대해 주인공은 일견 의연하다. "하긴, 그가 더럽겠습니까? 그가 다닌 곳이 더러웠던 것 뿐이죠(본문 23쪽)."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라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그런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 바퀴벌레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여자다. 그리고 여자는 선택을 요구한다."사랑이야, 우정이야?"

주인공의 고민을 바퀴벌레가 모를 리 없다. 그리고 늘 쓸고 닦는 '청결한' 바퀴벌레로 변신한다. 이 같은 배려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래서 주인공, 바퀴벌레, 여자친구의 삼각 관계는 이제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책 말미의 인터뷰에서 "동거하는 과정보다 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뒤틀려진 일상이 정상적으로 회귀되고 치유되는 과정. 당신은 그 과정에서 뭘 버리고 뭘 얻으셨나요.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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