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사람들』밑바닥 인생의 삶을 극화 희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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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하여 씌어지는 문학이다. 다시 말하면 공연하기에 합당치 못하면 희곡으로서의 구실은 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사나 장면묘사가 퍽 문학적이지만 막상 공연을 생각하면 주저하게되는 작품들이 심사 때마다 눈에 띈다.
『비복난』 (박정기) 은 방대한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이른바 대하드라마라고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엄청난 자료를 수집했고, 불교·서예 등에 관해서도 일가견을 갖고있으며 또한 한문지식도 대단하다. 빈틈없는 자세로 엮어져 그 노력에 읽는 사람도 압도된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보니 성격구축이 미흡해졌고, 사실의 기술은 있어도 극적인 요소가 모자란다. 좀더 압축되어 성격이 살고 극적 사건이 있었다면 이 작품은 최근 보기드문 역작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아버지』 (장미화) 의 작가는 무대 메카니즘도 잘 알고있어 전반부의 무대처리는 퍽 흥미로왔다. 그러나 연좌제에 묶여 꿈을 키우지 못한 채 좌절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새롭지 못하고 진부한 인상을 준다.
『한방 사람들』 (오대균)은 쓴 작가 역시 무대를 잘 알고 연극을 많이 보아온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밑바닥 인생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초라한 합숙소에 모아놓고 사회전체를 생각케하는 수법이 좋았고, 특히 등장인물들 중에 부정적인 인물이 없이 작가는 등장 인물들에게 애정마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적절히 효과를 내는 인물들의 사투리는 그들의 성격과 잘 부합되었고·이웃 술집의 장면묘사도 재미있었다. 살인강도사건도 무리 없이 재치 있게 처리하였다.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무대에 올려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같다.
비단 『한방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이번 애석하게 꿈을 키우지 못한 두 작품도 평년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향상되어 있는 작품인데 공연을 염두에 둘 때 약간의 하자가 있어 선외에 밀려났다. 앞으로 좀더 노력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잠재력이 엿보인다. 정진을 빈다. 이근삼·유민영·손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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