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율하락 고통 힘들지만 견디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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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화 환율이 급속하게 떨어지면서 사방에서 수출기업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원화 환율의 하락은 곧 수출기업들의 손익과 직결된다. 달러로 수출한 물품의 대금을 원화로 바꾸면 환율이 떨어진 만큼 손해 보게 돼 있다.

원화 값은 연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2004년 4.1% 절상됐고, 지난해에는 11.75%나 올랐다. 올 들어서도 벌써 5% 가까이 절상됐다. 2003년 말까지만 해도 달러당 1200원을 오르내리던 원화 환율이 지금은 960원대로 추락했다. 1달러어치를 팔았을 때 원화로 받는 금액이 240원이나 줄어든 것이다. 100억 달러어치를 팔면 2조4000억원이 손해다. 이러고도 수출이 계속 늘었다는 것이 오히려 용하다.

이 와중에 수출기업들은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환율이 떨어진 만큼 달러로 표시된 값을 올리거나 원가를 줄이지 못하면 그 손실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값을 올리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매출이 준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50대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 등 내로라하는 수출기업 17곳의 매출이 전년보다 줄었다. 채산성도 덩달아 나빠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이럴진대 중소 수출기업들의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당장 수출기업들의 고통이 크다고 해서 이를 일거에 해소할 뾰족한 대책은 없다. 외환당국더러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올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 방어에는 한계가 있고, 억지로 환율을 올리는 데 따른 부작용도 크기 때문이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수출입과 그에 따른 외환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 수출을 많이 해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원화 환율은 자연히 하락 압력을 받는다. 1998년 이후 내리 8년간이나 막대한 흑자를 냈으니 환율은 결국 떨어지게 돼 있었다. 다만 그 시기와 폭이 문제였을 뿐이다.

사실 원화 환율은 그동안 의도적으로 높게 유지된 감이 있다. 이 정부 출범 이후 국내경기가 바닥을 기면서 기댈 곳이라고는 오로지 수출밖에 없었기 때문에 외환당국은 환율 방어에 결사적이었다. 수출 증가세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환율을 높게 붙잡아 놓은 것이다. 지난해 그것이 한계에 이르자 환율이 맥없이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또다시 환율 방어에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결국 해법은 수출기업들이 스스로 견디고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남다른 기술로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제품 경쟁력을 갖추든지, 아니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원가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지켜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국제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높은 환율에 기대 손쉽게 장사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마침 현대.기아차 임직원이 환율 악재를 이기기 위해 임금 동결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원가 부담을 덜겠다는 각오다. 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라 환율이 일시에 반 토막 난 뒤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부활한 일본 기업들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