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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되는 'G10 국세청장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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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세청은 최근 매우 의미 있는 발표를 했다. 선진 10개국 국세청이 함께 만든 'G10 국세청장 회의'에 창설 멤버로 참여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10개 나라에는 미국.일본.캐나다.독일.영국.프랑스 등 G7 중 6개국, 떠오르는 거대경제권인 중국과 인도, 오스트레일리아가 포함된다고 한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두 손을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는 적어도 이들 국가에서는 억울한 세금 때문에 타격을 받는 일은 적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들이 해외 정부를 상대하는 데 쏟던 에너지를 본업에 집중해 경쟁력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해 자리 잡으면서 현지 정부와의 관계에서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업이 외국 정부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으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선 이들 조사의 대부분이 명쾌한 정답이 없다. 현지 세법을 준수하면서 정당하게 사업을 수행하더라도 어느 순간 과세 당국이 나서면 천문학적 액수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기 일쑤다. 여기다 외국 기업으로서 고도의 정치적.문화적 판단이 스며 있는 이런 결정을 예측하거나 제대로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일본.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전가격 세무조사의 칼날을 예측하거나 피하기가 쉽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제도와 관행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지 세법을 잘 지키고 성실하게 사업을 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과세 당국이 새로운 규정을 들이대면 탈세기업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 탓에 해외 세금과 관련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업은 엄청나게 많은 자원을 소모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정도의 세금 추징액이 매겨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부당한 추징을 당한 뒤에도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국세청은 이번 발표 이전에도 세금분쟁이 생기면 해당 국가 국세청과 대화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전적으로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른 임기응변이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제 10개국 국세청장 회의가 본격 가동되면 체계적이고 입체적인 세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경제 전쟁터에서 소총을 들고 외로이 싸우고 있는 기업 병사들에게 한국 국세청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가세한 셈이다.

특히 한국 국세청장이 앞장서서 주요국 국세청장들을 설득해 이번 협의체를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세청장회의를 올해 9월 개최하게 됐다는 소식도 그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국세청장회의에 포함된 9개국은 우리 대외수출의 56%, 대외투자의 61%를 차지하는 한국의 주요 무역 및 투자국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나라들에서 세무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덜어내고 마음 놓고 기업 활동을 하게 됐을 때 한국 경제 전체가 얻게 될 이익은 매우 크다.

이번 국세청장회의 참여가 실제로 기업 현장에까지 도움이 되는 단계까지 가려면 더 많은 국제 조세 부문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적자원을 끊임없이 확충해 이번 조치가 명실상부한 국제 경제지원군 창설 효과를 낼 수 있기 바란다. 또 이번 10개국 국세청장 회의를 주도한 정신이 다른 모든 정책 분야에도 스며들기를 바란다.

류한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경영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