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빈소에 펼쳐진 검찰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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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손국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손국희 사회2부 기자

손국희 사회2부 기자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변창훈 검사의 빈소는 침울함으로 덮여 있었다. ‘국가정보원 수사 방해’ 사건의 피의자였던 그는 6일 영장실질심사를 한 시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검찰 간부들이 모인 그곳엔 분노·한탄·슬픔이 뒤엉켜 떠돌았다.

오후 8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조용히 조문을 왔다. 빈소 한편에 앉은 그는 안경을 벗고 2~3분간 눈물을 닦았다. 검찰 인사들은 차마 문 총장 쪽에 눈길을 주지 못하고 조용히 술잔만 들이켰다.

“억울하게 죽었다. 그렇게 몰아붙이고….” 문 총장과 2m 거리에 앉은 한 현직 지청장이 술에 취해 큰소리를 냈다. 변 검사의 서울대 동기(1988년 입학)들이 모인 테이블에선 다양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압수수색을 애들(변 검사의 아들·딸)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모욕적으로 해?” “국정원 수사팀에 화살을 돌려선 안 돼. 창훈이의 비극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서 시작됐는데….”

검찰에 몸담았다가 변호사가 된 이들은 검찰 간부들을 붙잡고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총장과 간부들은 무슨 생각인 거냐”고 탄식했다. 변 검사의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마다 달랐지만, 검찰이 위기라는 인식은 공통으로 가진 듯했다.

취재일기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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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조금은 분위기가 진정되는 듯했던 빈소를 향해 변 검사의 부인이 오열했다. “우리 남편이 불쌍하다. 여기 검사들도 다들 윤석열(서울중앙지검장)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변 검사 어머니가 소리쳤다. “여기는 잔칫집이 아니야. 다 나가!”

약 10초간 침묵이 흘렀다. 일부 검사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다른 검사들은 황망한 듯 손을 모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을 꾹 다물고 허공을 쳐다보는 검사도 있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전 정권 관련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휴일을 반납하고 검찰 청사에서 새벽 동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검사가 부쩍 늘었다. 그러나 국가와 정의를 위해 주어진 칼로 자신을 도려내야 하는 이중적 상황에 부닥쳐 있다. 문재인 정부 개혁 과제의 최상단에 위치한 집단도 그들이다.

빈소에서는 온갖 외침과 흐느낌이 이어졌다. 적폐로 몰린 검사와 적폐청산에 나선 검사가 한자리에 있는 기묘한 현장이었다. 그들을 울린 수사가 끝난 뒤에, 이 사정의 폭풍이 걷힌 뒤에 검찰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고인의 명복과 함께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빈다.

손국희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