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갑지만 마음 편치 않은 한·중 사드 갈등 봉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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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봉합 단계로 들어섰다. 양국 외교부는 어제 공동으로 한·중이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조속히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회복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1년4개월 동안 양국 관계에 깊은 상처를 안겼던 사드 마찰이 봉합 수순에 접어든 것이다. 열흘 후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진일보한 발걸음을 내디딜 전망이다.

사드 마찰 풀고 관계 회복 합의한 건 희소식이나 #사드 보복 재발 방지나 사과는 일언반구 못 듣고 #민감 사항 중국에 약속한 건 안보 주권 훼손 우려

사드 갈등 봉합은 희소식이다. 다행스럽고 또 반갑다는 마음이 앞선다. 중국의 무차별 사드 보복 탓에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 했던 우리 기업들이 이제 허리를 펴게 됐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보다 건설적 협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도 성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양국의 합의 결과를 들여다보면 그저 박수나 치며 좋아만 할 일은 아니란 생각에서다.

우선 우리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던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재발 방지나 유감을 표시하는 일언반구도 듣지 못했다. 더 심각한 건 우리의 안보 주권이 훼손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감한 안보 사안들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중국에 약속한 것이다. 그것도 구두 형식이 아닌 문서로 말이다. 크게 네 가지다.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 사드 추가 배치는 없다,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불참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등이 그것이다. 사드는 북핵 대비용이지 중국을 타깃으로 한 게 아니란 첫 번째 내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안들이다.

북핵 고도화에 따라 사드 포대가 더 필요할 수도 있고, MD 체제 가입 여부나 한·미·일 안보협력의 발전 방향 등은 한반도 정세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가변적 성질을 갖는데 이런 중요 안보 사항에 대해 앞으로 그럴 일 없다고 중국에 덜컥 약속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미국 방문과 7월 독일의 G20 정상회의 참가 때 ‘한·미·일 안보협력 발전’을 약속한 바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중국에 제2, 제3의 사드 보복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드 갈등 해소는 시급한 일이다. 중국은 물론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바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 주권이 담보로 돼선 안 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의 거친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정부에 이렇다 할 요구 없이 꿋꿋이 버텨왔던 건 안보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대 사안임을 인식한 결과가 아니었나. 사드 마찰 완전 해소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압박하는 안보와 관련된 약속들은 최대한 모호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동맹 여부에 대해 취하고 있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부터 참고해야 할 것이다.